얄타 여행 첫날, 마싼드라 와이너리에서 ‘3병 묶음 스페셜 프라이스 레드와인’을 샀다. 한 병당 약 7천원 꼴이다. 관광객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길게 줄을 서서 와인 서너 병씩 장바구니에 담는다. 마싼드라 와인이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든다.

눈 덮인 아이패트리 산과 짙푸른 흑해가 함께 보이는 숙소에서 ‘황제의 와인’이라는 마싼드라 와인을 마셨다.

마싼드라 와이너리는 3년 전 러시아에 합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이 분쟁의 위기가 감도는 크림반도의 남동쪽 끝자락인 얄타에 위치한다. 1890년대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의 여름궁전에 사용할 와인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포도원이다. 이곳의 저장고는 산을 파서 길이 500피트, 지하 200피트까지 내려가는 터널 속에 위치해 있어 와인 저장에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저장고에는 100만 병이나 되는 보석같이 빛나는 와인들이 잠들어 있다고 한다. 1776년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이 2001년 소더비 경매에서 한 병에 4만3500달러에 팔려 지금까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와인 톱 10에 들어 있다.

마싼드라 와인은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2월, 니콜라스 2세의 여름 별장이었던 리바디아 궁전에서 열린 얄타회담때, 그들의 식탁에 서브되면서 그 진가를 세계에 알린 바 있다.

얄타 서부 해안가 언덕의 리바디아 궁전. 지상 2층의 눈처럼 하얀색 궁전은 섬세하고 우아한 외관과 수려한 내부 장식의 이탈리안 르네상스 양식 건물로, 아름다운 흑해와 어울린 한 폭의 풍경화다.

1945년 2월 4일부터 11일까지 루스벨트, 스탈린, 처칠 등 미국과 소련, 영국의 지도자들은 이곳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판을 짰다. 8일간의 협상 게임과 밀실 흥정이 진행됐다. 당시 히틀러의 독일은 몰락하고 동부전선의 소련은 파죽지세로 베를린 공격을 서둘렀다. 그러나 서부전선의 미․영군은 벨기에 전선에서 주춤했다. 특히 미군은 일본의 절망적인 옥쇄(玉碎) 돌격으로 희생이 많았다. 일본 본토 상륙으로 일본을 항복시키려면 50〜100만의 희생자가 날 것으로 우려한 미국 관심의 초점은 소련의 참전으로 미군의 희생을 줄이는 것이었다. 미국은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요청했다.

루스벨트는 5년 이상의 한반도 신탁기간을 거론했다. 조선이 일본 지배를 오랫동안 받아 자치의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이유였다. 영국도 동맹국이었던 일본과의 향후 관계를 고려해 한반도 독립 시기의 명시를 거부하는 입장이었다. 마침내 소련의 대일본전 참전을 조건으로 한반도 신탁통치에 대한 스탈린의 승인을 얻어냈다. 한민족 분단의 불행한 역사가 잉태된 강대국들 간의 거래였다. 소련은 그 대가로 러․일 전쟁에서 일본에게 잃은 영토를 다시 차지하기로 했다.

역사의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만일 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가 소련군의 참전을 그토록 간곡하게 요청하지 않았더라면, 독일군과의 싸움에서 전력을 소진한 소련이 극동에서 일본과 전쟁하는 일은 없었을 테고, 한국은 카이로 회담에서 결의한대로 자유로운 단일 독립국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일행 모두가 애통해 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의 별장으로, 독일군 점령기간 중에는 전시병원으로 쓰이기도 했던 리바디아 궁전은 1974년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1층은 얄타회담과 관련된 전시물이, 2층은 비운의 니콜라이 2세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황제와 가족들의 사진, 초상화, 궁전의 집기, 훈장 따위이다. 사진 중에는 니콜라스 2세 황제와 황후 알렉산드라, 황태자 알렉세이에게 큰 영향을 끼친 심령술사 요승 라스푸틴이 함께 찍은 모습도 있다.

궁전의 가이드는 종교없는 수도승 라스푸틴이 황후의 신임을 배경으로 러시아의 체제를 크게 흔들어 로마노프 왕조가 몰락하는 데 한 몫 했다고 강조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시공을 넘어 돌고 있다.

이남숙(아시안프렌즈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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