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호 ㈜터칭마이크 대표이사
오종호 ㈜터칭마이크 대표이사

음력 2월은 묘월(卯月)이라 불린다. 묘월은 갑목(甲木)과 을목(乙木)의 목 기운만으로 이루어진 계절이다. 같은 목이지만 갑목과 을목은 엄연히 다르다. 갑목이 중력을 거스르고 참천(參天)하는 양의 기운이라면, 을목은 유약한 음의 기운으로서 타고 오를 수 있는 갑목을 반긴다. 온기가 더해진 햇볕을 쬐고 촉촉한 빗물을 맘껏 마시며 3월의 갑목과 을목은 생기 있게 서로 어우러진다.

사업으로 승승장구하는 후배가 있다. 3번의 사업에 연거푸 실패했지만 주저앉지 않고 4번째 도전을 택한 지 만 4년이 지난 지금, 그의 사업은 반석 위에 올라 있다. 후배는 식구들을 재울 공간을 마련하지 못해 교회 마룻바닥을 빌려 매트를 깔고 생활하기도 했고, 다섯 아이를 데리고 처형 네 집에 얹혀살기도 했다. 후배의 3전 4기 비결은 무엇보다 실패를 통해 깨달은 그만의 통찰을 다시금 지독하게 실천할 수 있도록 응원해 준 가족 덕분으로 보인다. ‘남편에게 잘 해주라’는 장모의 말을 제수는 열심히 실천했고, 가족의 신뢰에 힘입은 그는 또 한 번의 시작을 통해 실패에서 체득한 성공의 비밀을 실전에서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후배는 자신의 장모를 하늘처럼 모신다.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는 선배가 있다. 10년 전 사업 실패로 전 재산을 날린 그는 오갈 곳이 없어서 식구들과 함께 기차역 광장에 텐트를 치고 살기도 했다. 신문배달, 우유배달, 택배기사, 정수기 수리기사 등 네 개의 직업을 갖고 하루 18시간씩 일했던 그는 8년 만에 빚을 모두 갚고 마침내 1인 기업을 재창업하여 자신의 꿈을 이어갔다. 선배의 곁에서 형수는 늘 용기를 북돋워 주었고, 8년 동안 기꺼이 고생을 함께했다. 선배는 형수를 끔찍하게 아낀다.

“엄마는 불임이 아니었어. 네 아빠와 엄마는 세상에 이미 충분한 인구가 있으니 우리의 아이를 갖기보다 너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고통 받고 있는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선택한 거지.” 지난 달 초에 개봉한 영화 ‘라이언’에서 수(니콜 키드만 분)는 인도에서의 유년 시절의 기억을 되찾고 방황하는 아들 사루에게 이렇게 말한다. 길을 잃은 5살의 사루가 똑똑하고 유능한 청년으로 성장해 25년 만에 인도의 가족과 재회할 수 있었던 것은 수와 그의 남편 존이 사루에게 선사한 ‘기회’ 덕택이다. 영화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을 향한 기다림이 만들어 내는 기적을 감동적으로 보여 준다.

안정적인 일자리는 소수의 것이다. 누군가는 창업을 하게 되어 있다.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이 아닌 우리에게는 실패 확률이 훨씬 높다. 자본의 부족과 경험의 미숙이 그 확률을 높인다. 후배와 선배 가족이 겪었던 고통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이 땅에는 오늘도 수많은 실패자들이 쉼 없이 양산되고 있다. 창업의 뒤를 이은 창직이라는 단어는 말장난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후배와 선배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힘은 가족이 부여한 기회에 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늘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그들의 배우자들은 진정 아름답다. 그 약속에 대한 대답은 기쁠 때와 즐거울 때를 전제로 질문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성공신화는 수많은 실패담의 무덤 위에 피어난 화려한 꽃이다. 사람들은 벌과 나비처럼 그 꽃을 좇는다. 신화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한 실패에 대해 존중받을 때 사람은 새로운 시도에 나설 용기를 얻는다. 몸으로 절절하게 배운 것을 적용할 새로운 기회를 얻을 때만 실패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너무도 자주 우리 옆의 사람들이 미흡과 미숙, 결핍과 결여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3월의 땅에서 다시 꿈틀거리는 을목들과 을목들에게 덤덤히 기댈 몸을 내어주는 갑목들에게서 배우고 또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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