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단지’ 울진군, 건설 중단으로 지역 경제 ‘빨간불’
“정부와 절충안 마련해 건설 재개해야”

경북 울진 북면 덕천리·고목리 일대 신한울 3, 4호기 건설 부지와 신한울 1, 2호기 모습.
경북 울진 북면 덕천리·고목리 일대 신한울 3, 4호기 건설 부지와 신한울 1, 2호기 모습.

“오는 길이 많이 불편했지요?”

울진군 관계자가 건넨 첫 마디다. 예부터 우리나라 지도를 펼쳐놓고 봤을 때 ‘등허리 긁어 손 안 닿는 곳’이라 불린다는 경북 울진. 철로도 고속도로도 닿아 있지 않아 외부인에게는 깊은 산 속 자연을 벗 삼은 순박한 동네로 인식되는 듯하다. 알고 보면 원전 산업으로 지역 경제를 이끌어가는 곳이지만 말이다.

▲ 울진군 원전 수용 10기 다 못 채우나

새파란 동해와 사시사철 초록 우거진 금강송을 낀 이 동네는 몇 차례 정권이 바뀌는 동안 국내에서 원전이 가장 많이 들어선 소위 ‘원전 단지’가 됐다. 정부와 오랜 대립 끝에 울진군은 총 10기의 원전을 수용했다. 원전 10기는 각각 한울 1~6기, 건설 중인 신한울 1, 2호기, 건설 준비 중 중단돼 재개를 기다리는 신한울 3, 4호기다.

서울에서 울진까지는 시외버스로 꼬박 3시간 40분이 걸린다. 울진종합버스터미널에 내려 바다를 끼고 20여분을 달리면 하얀 돔 2기가 나란히 솟은 모습이 보인다. 신한울 1, 2호기다. 그 너머 바닷가 쪽에 한울 1~6호기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줄을 지어 서 있다. 신한울 3, 4호기도 앞서 지어진 8기 옆에 건설되기로 했지만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이 탈핵과 원전 건설 계획 전면백지화를 발표하면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결국 신한울 3, 4호기 건설 계획이 제외됐다. 이런 탓에 건설 부지는 1년이 넘도록 터만 닦인 상태로 ‘노는 땅’이 됐다.

▲부지 선정까지 했는데…공터로 대기 중

울진은 원전 입지 조건에 들어맞는 환경을 갖추고 있어 80년대부터 원전 부지로 낙점됐다. 무엇보다 원자력발전소는 해수를 끌어다 냉각수로 쓰기 때문에 바다 인근에 짓는데, 울진은 바다로 둘러싸여 건설 조건을 충족한다.

울진군민은 천혜의 자연과 그들이 평생 살아온 터전이 훼손될 것을 우려해 원전 수용을 적극적으로 반대해왔다. 정부는 울진군에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원금, 고속도로 등을 제시했고 군민은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북면 덕천리·고목리 일대,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자력본부 발전팀의 안내를 받으며 신한울 3, 4호기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으로 올랐다. 차가 다닐 수 있도록 터놓은 길이지만 건설 현장과 이어져 있는 비포장 흙길이다. 원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평평한 공간이 전망대로 마련돼있고 안전 바(bar) 아래로 분지 형태의 3, 4호기 부지가 내려다보인다.

신한울 1, 2호기 면적과 같은 넓이의 신한울 3, 4호기 건설 부지는 건설 장비 하나 들여놓지 않은 ‘커다란 운동장’과 다름없다. 발전소 건설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 이 넓은 땅이 아무런 쓰임새 없이 1년 넘게 방치되고 있다. 공간을 채우는 바닷바람은 저항 한 번 받지 않은 채 세차게 불 뿐이다. 바로 옆 신한울 1, 2호기 주변으로는 대형 트럭이 들어왔다 나가기도 하고 해가 어둑어둑 진 시간에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현장 직원들의 모습이 대비됐다.

신한울 3, 4호기 사업 추진 경위. (제공: 한국수력원자력)
신한울 3, 4호기 사업 추진 경위. (제공: 한국수력원자력)
▲울진군 ‘지역 경제 비상’

울진군민과 맞서온 시간이 무색하게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울진에 아홉, 열 번째 원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탈원전 기조는 계속됐다. 신고리 5, 6호기는 공론화를 통해 건설 재개됐지만, 신규 원전 6기 중 천지 1, 2호기, 대진 1, 2호기는 건설 계획이 무산됐다. 부지까지 마련된 채로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3, 4호기는 신고리 5, 6호기와 천지·대진 1, 2호기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남았다.

울진군 관계자는 “2030년이 되면 이미 폐로 단계에 접어서는 원전이 많은데, 앞으로 전기차 이용 등 전기 수요가 늘어 값비싼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지면 비싼 전기요금은 누가 어떻게 감당할지 우려된다”며 “신규 원전은 더는 건설하지 않더라도 기존에 계획한 신한울 3, 4호기까지는 지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사업자 입장에서는 처음 계획했던 대로 원자력 발전소가 지어지는 것이 부지도 안전 검증된 곳이고 지역 주민도 설득돼있기 때문에 가장 좋은 전개”라고 설명했다.

신한울 3, 4호기 건설이 완전히 취소된다고 가정할 때 건설 부지 활용 방안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향후 부지를 매각할지, 태양광 발전소로 이용할지, 아니면 또 다른 방법을 취할지, 부지 활용 방안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신한울 3, 4호기 건설을 중단하면서 울진군이 입은 피해는 막대하다.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서 유동인구 5000여명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북면 일대 식당 등 가게는 대부분 장사가 안돼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문을 닫았다. 임대 주택 건설에 투자한 주민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신한울 3, 4호기와 동일 노형인 신한울 1, 2호기의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에 따르면 울진군은 건설 단계에서 외지 유입인력을 약 5360명으로 추산했다. 또 건설공사 시 건설인력 유입으로 227여 세대 규모의 사택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건설 재개? 중단? 답보 상태…각계 건설 재개 안간힘

울진범군민대책위원회 공동의장을 맡은 장유덕 울진군의회 부의장은 “지역이 허락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 국가사업인데 울진은 원전 사업 수용성이 높았다”며 “이런 지역에 대통령 공약만으로 원전 건설을 정지시키겠다면 울진군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절박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장 부의장은 “앞으로 정부를 상대로 울진군수 등 관계자들이 지속해서 절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2월 13일에는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 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본부’도 출범했다. 뜻이 같은 산업계·학계·정계 관계자가 모여 전 국민을 상대로 온·오프라인 서명 운동을 벌였다. 서명운동본부는 온라인 서명운동 참여자가 20만명이 넘으면 청와대에 공식 의견을 제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1월 2일 현재 온라인 서명운동에 참여한 인원은 11만7600여명에 달한다.

현장을 둘러보고 내려왔을 때는 짧은 겨울 해가 이미 등 뒤로 넘어간 뒤였다. 짙은 어둠이 드리워 한수원을 빠져나가는 길은 한 치 앞이 분간되지 않는 암흑이었다. 황량한 부지는 적막하고 고요하기만 했다. 울진군의 침체한 분위기가 연상됐다. 이미 상당한 비용이 투입됐지만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3, 4호기의 텅 빈 부지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다.

신한울 3, 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각계의 목소리가 드높아지고 있는 만큼, 머지않아 울진군의 아홉, 열 번째 원전도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신한울 3, 4호기가 이 부지에 들어설 수 있을지, 이름으로만 남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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