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혁신역량・잠재력 미래위한 지속성장 ‘키’
창의와 소통,섬세함 등 선천적 장점 부각해야

과거 남성들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전기공학계에 여성들의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관련 교육·연구기관에 퍼져있던 남성 중심의 문화·환경을 바꿔, 여성 공학도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성들이 연구·교육·학술·소통 등 다양한 활동 과정에서 성별의 차이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하고, 한 인간으로서 잠재된 역량과 창의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기·에너지 분야 ‘혁신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여러 글로벌 기업들은 일찍부터 ‘다양성과 포용성(D&I;Diversity & Inclusion)’이라는 가치에 주목하고, 상대적으로 소외된 여성리더를 육성, 지속성장의 ‘키’로 활용하고 있다.

◆지멘스·GE·슈나이더 일렉트릭, 여성 잠재력 발휘 적극 지원

지멘스, GE, 슈나이더 일렉트릭 등 글로벌 기업들은 개인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업문화 속에서 진정한 혁신이 가능해진다는 믿음을 갖고, 여성 공학도 및 리더 양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먼저 지멘스는 여성 리더 양성을 위한 ‘우먼 리더스 프로그램(Women Leader’s Program)’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자사 인재 육성 프로그램 ‘SLE(Siemens Leadership Excellence)’에 따라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직원들이 능력을 발휘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업무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다.

여기에는 피부색이나 성별, 종교, 나이, 성적 취향 등으로 인한 차별 없이 모든 인간을 환영하겠다는 기업 가치가 반영돼 있다.

지멘스 관계자는 “우리는 개방성과 존중, 관용을 가진 공동체 속에서 최고의 아이디어가 탄생하고 구현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D&I가 혁신을 이끄는 원동력이라는 철학 아래 여성 리더 양성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전기·에너지 분야 글로벌 리더인 GE도 여성 리더 육성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깨닫고, 이른바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여성리더 육성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이와 관련 GE 우먼스네트워크(Women's Network)를 발족, 분야별 여성 리더십을 지원하고 있으며, 사내 여성 직원들끼리 스스로 서로를 돕는 문화를 장려하고 있다.

현재 43개국에 걸쳐 10만명이 넘는 전 세계 GE 여성 직원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2003년 3월 본격 시작해 현재 300명 이상의 여직원이 활동하고 있다.

GE 우먼스네트워크는 매년 ‘WISE(Women in Science & Engineering) 심포지엄’을 개최, GE내 과학기술 분야를 이끌고 있는 여성 임직원을 대상으로 네트워킹과 신기술 트렌드 공유, 외부 연사들의 리더십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고 있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최근 국내에서 여성 인재 육성을 위한 ‘영 피메일 탤런트 & 슈나이더 일렉트릭(Young Female Talent & Schneider Electric)’을 개최했다.

이는 여성 공학도를 포함한 대학생을 초청, 젊은 여성 인재 양성을 위한 아이디어를 나누는 자리로, 슈나이더가 양성평등을 촉진하기 위한 기업문화를 선도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마련됐다.

슈나이더 관계자는 “슈나이더는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창의력 있는 다양한 인재 양성에 앞장서고 있다”며 “특히 기업의 ‘유리천장’을 없애고 이공계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비율이 적은 여성의 리더십 향상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실현한다”고 전했다.

◆전기학회·전력전자학회, 여성 엔지니어 소통의 장 마련

이런 트렌드에 발맞춰 전기공학계도 최근 들어 여성 리더 육성의 필요성을 깨닫고, 여성 엔지니어 간 소통을 활성화하거나 학술·연구 역량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있다.

먼저 대한전기학회(회장 이흥재)는 오는 11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하계학술대회 기간 ‘우먼 엔지니어링(Women Engineering) 진로 멘토링’과 ‘여성 엔티니어 캡스톤 디자인 경진대회’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전기공학 및 인접분야 전공 여학생들이 미래 엔지니어로서 자긍심을 높이고, 자기 주도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계기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다.

전기학회 여성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이난숙) 주최로 열리는 이번 행사에서는 전자부품연구원, 진전기엔지니어링, 안전관리위원회 등의 선배 여성 공학도들이 공학도로서의 삶과 인재상, 연구실 관리 노하우, 엔지니어링 기법 등을 강연하는 시간이 진행된다.

또 진전기엔지니어링, 조엔지니어링, 마산대, 한라대, 한성대 등의 선배 공학도들이 진행하는 진로 멘토링 시간도 이어진다.

여학생들의 창의성과 실무능력, 팀워크 리더십 등을 높이기 위한 캡스톤 디자인 경진대회에는 10개 팀이 참여,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겨룰 예정이다.

이에 앞서 전력전자학회(회장 노의철)는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전력전자학술대회 기간 부대행사로 ‘Woman PE 엔지니어 교류;여성 전력전자인 모임 통(通)’을 개최하고, 학회 역사상 최초로 여성 공학도들이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학술대회에 참가한 여성 참가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이번 프로그램에는 학부생을 비롯한 석박사, 교수 등이 참여, 여성 공학도들이 평소 가졌던 생각과 문제의식, 노하우 등을 나누고 토론했다.

특히 학회 최초의 여성 이사인 박성미 한국승강기대 교수를 비롯해 김예린 UNIST 교수, 한경희 한라대 교수, 김소연 해군사관학교 교수 등 국내 4명뿐인 여성 전력전자 전공교수들이 모두 참여, 여성 공학도들의 소통에 참여했다.

이중 김소연 교수는 1999년 최초의 해군사관학교 여성 생도로 입학한 후 전기공학으로 전공을 정하고, 설승기 서울대 교수의 전력전자연구실에서 함정 전기추진 시스템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등의 과정에서 겪은 애로사항과 여성 공학도가 가져야 할 자세를 강연, 참가자들의 공감대를 얻었다.

김 교수는 “해사 졸업 후 2년간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볐다. 중위 2년차에 위탁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했고, 서울대 전력전자연구실로 들어갔다. 군을 나와 들어간 연구실은 군대 그 자체였다”며 “최초의 여성 생도였던 저는 연구실에서도 최초의 군 위탁생이자 여학생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공부도 힘들었지만, 남학생만 있는 곳에 혼자 여학생이라 생활이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군에 있을 걸 왜 생고생을 자처했을까 고민도 했지만, 당시의 도전과 최선(노력)이 현재의 행복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전남대 전기공학과 여서현씨는 여성 공학도로서의 삶과 학부생들을 위한 이야기를 전했다.

여서현씨는 “진학을 선택하고 처음 실험실에 갔을 때 남학생은 12명이었고, 저 혼자 여학생이었다. 실험실은 남학생들도 군대라고 표현할 정도로 남성적인 환경과 분위기였다”며 “때문에 석사 초반 방황을 많이 했다. 연구주제를 잡는데도 시간이 걸렸는데, 아침저녁 함께 생활하던 선배와 지도교수님과의 상담을 통해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석사 2년, 박사 4년은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매우 짧은 기간이다. 입학 전부터 강한 동기를 갖고 구체적 목표를 세워야 실력을 쌓는데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지도교수, 선배들과 많이 소통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한국전기연구원 선휘일 연구원은 학교를 벗어나 여성 엔지니어로서 실제 겪고 있는 어려움과 이를 이겨낼 수 있는 노하우를 발표했다.

선 연구원은 “전압형 HVDC 시스템 국산화 과제에 참여하고 있다. 일하다 보면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다”며 “어딜 가든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남의 눈과 처신에 필요 이상으로 신경쓰다보니 우울하기도 하고, 내가 왜 이곳에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성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고민을 했다. 대화할 때 ‘다나까’ 말투를 쓰고, 메일도 감성을 배제하고 딱딱하게 썼다. 하지만 깨달은 것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가야할 곳, 목표는 같다는 점이다. 그리고 같은 성별일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며 “서로 다른 부분을 인정하고, 창의와 소통, 섬세 등 선천적으로 강한 장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는 이때, 인간에게 좀더 필요한 게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는 여성만의 경험과 시각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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