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수명 관련된 명확한 기준.규정 시급

산업화 시대 대거 설치된 각종 전기·전력설비가 노후화되면서, 이에 대한 안전점검과 유지보수, 교체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력설비의 경우 한국전력공사를 비롯한 명확한 주체가 관련 법령에 따라 관리하고 있지만, 수용가의 전기설비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관리 체계로 각종 문제를 초래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수명이 다한 설비가 일으키는 전기재해는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중대한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오래된 전선은 다양한 전기설비 중에서도 전기화재와 가장 관련이 큰 설비지만, 유독 수명과 관련된 논의의 중심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이에 본지는 노후 케이블의 위험성을 진단하고, 전선을 보다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기획 시리즈를 3회에 걸쳐 보도한다.

190여명의 사상자를 내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트렸던 밀양 세종병원 화재는 노후 케이블이 어떤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사건이다.

건축·소방·의료 등 각종 부실한 안전관리 체계의 총체적 부실이 재앙을 확산시켰지만, 결국 노후 케이블의 합선이 화재의 시작점, 즉 ‘뇌관(雷管)’의 역할을 했다는 점을 잊는다면 자칫 제2, 제3의 ‘참사’가 되풀이될 수도 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세종병원 화재는 1층 응급실 내 탕비실 천장의 콘센트 전원용 전기배선 합선으로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 합선은 피복이 손상된 전선들이 접촉할 때 발생하는 사고다.

세종병원은 2008년 개원했지만 건물 자체는 1992년 준공돼 25년이 넘은 건물로, 결국 오래된 케이블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것.

세종병원참사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아도, 노후 케이블로 인한 화재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서울 영등포구 스크린골프장의 전선 단락 화재, 경북 경주 방직공장 배선 단락 화재, 부산 목욕탕 천장 전선 발화 화재, 김해 모텔 보일러 전기배선 단락 화재 등 올해 들어 노후 케이블로 인한 화재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전기안전공사가 매년 조사·발표하고 있는 ‘전기재해 통계분석’에도 노후 전선·케이블이 얼마나 안전에 큰 위협을 미치는지 여실히 드러나 있다.

전기안전공사가 지난해 하반기 발표한 ‘2016년도 전기재해 통계분석’에 따르면 2016년도 전기화재 7563건 중 옥내배선용 전선 763건, 전기기기용 전선/코드 660건, 옥내 인입배선 289건, 전력공급용 전선 245건, 기타배선/배선기구 245건 등 전선·케이블로 인해 발생한 화재 비율은 29.1%(2202건)에 달했다.

특히 이들 전선·케이블 화재의 주요 원인은 절연 열화로 인한 단락이나 과부하, 반단선 등으로, 대부분 오래된 케이블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노화로 인해 피복이나 도체가 손상됐거나 전력 사용량이 적었던 과거 제작·시공된 전선을 계속해서 사용한 사례인 경우가 많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최초 착화물이 전선 피복인 경우가 4324건(57.2%)으로 전체 전기화재의 절반을 넘는다는 점이다.

난연 케이블을 사용했다면 화재의 확산을 어느정도 예방할 수 있었던 것으로, 과거 사용했던 비난연 전선이 화재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증명해준다.

결국 오래된 케이블은 단순히 수명이 다해 발생하는 문제뿐 아니라 제품의 성능, 특성 부족으로 인한 사고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있다. 사고를 초래할 수 있는 전선을 찾아내고, 수명이 다된 케이블을 교체하도록 하는 등 제대로 된 안전관리체계를 갖춘다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관련 현행 법, 제도로는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전기안전공사 관계자는 “노후 전선으로 인한 합선, 단락 등은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며 “전기설비를 관리하는 안전관리자들이 주기적으로 누설전류 측정만 제대로 해줘도 예방할 수 있는 사고가 많다. 당장 산업부의 전기안전관리자 직무고시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지만, 지키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건물이 정기검사 대상일 경우라면 시정이 가능하지만, 밀양 세종병원처럼 정기검사 대상이 아닌 곳은 안전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전선업계 한 관계자는 “전선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제조사들도 명확히 답변하기 어렵다. 30년 정도는 사용해도 문제없을 정도로 만들고 있지만, 이마저도 사용 환경에 따라 들쑥날쑥 변화한다”며 “결국 전선 수명과 관련된 명확한 기준이나 규정이 없는 것이 문제다. 과거 사용하던 전선을 난연·내화 등 안전성이 강화된 제품으로 교체하도록 유도할 장치가 없는 것도 따져볼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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