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업체 일방적 희생 강요 더 이상 안돼
업계 차원서 문제 대응 시스템 구축 필요

2014년 규격 개정 이전의 ‘구식’ 저독성 난연가교 폴리올레핀 절연전선(HFIX)이 설치된 곳에서 수분침투로 인한 절연저하, 누전 등이 발생했을 때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한 ‘솔로몬 해법’은 없을까.

전선·시공업계 전문가들은 누가 봐도 공정한 방법으로 누전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따라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납득할 만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조사·분석 방법이 사실상 없어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사례 별로 분쟁을 일으키는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논란을 만들고 이를 확대하는 ‘촉매’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조언이다.

전문가들은 고양시 사건의 경우 분쟁을 키우고 사건을 확대한 가장 큰 문제로 전선 제조업체인 T사의 무책임한 대응을 꼽았다.

‘수분이나 습기에 노출되면 절연저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의사항이나 KSC 3341 규격에 따른 제조 공법 등을 면피용으로 내세우고, 시공사의 부실한 관리와 잘못된 시공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한 것이 문제 해결을 늦추고, 논란을 확대시켰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같은 T사의 대응은 다른 메이저 전선 브랜드들이 HFIX 도입 초기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전선 교체에 필요한 비용이나 제품 등 손해에 상응하는 배상을 해오던 것과는 정반대의 방식이라 허술한 대응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다른 메이저 전선업체들이 문제를 인식한 후 단점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공정을 연구하고, 새로운 제품을 연이어 출시한 것과 달리 T사는 여전히 HFIX 신제품을 내놓지 않고 있는 점도 비판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전선업계 관계자는 “수분침투로 인한 절연파괴 등 구식 HFIX의 단점이 불거져 이슈화된 이후 메이저 전선업체들은 문제의 확산을 막기 위해 스스로의 책임을 인정하고 나름의 방식대로 보상했다. 또한 제품의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다”며 “하지만 T사의 경우 타 브랜드와 달리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었다. 이번 고양시와 비슷한 사례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음알음’ 퍼지면서 점차 고객들에게 외면받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T사의 이기적인 태도로 인해 홀로 수백여 누전 세대의 전선을 교체해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된 시공사가 반발하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건이 일파만파로 퍼지게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선·시공업계 전문가들은 늦더라도 제조사가 책임을 인정하고 시공사와 짐을 나누어 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T사의 일방적인 주장대로 시공 불량이나 부실한 자재 관리로 인한 문제로 보기에는 T사가 제시하는 근거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또 현재와 같이 시공사의 일방적 희생만으로는 수백여세대에 이르는 누전 가구의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기 어려운 점도 문제다.

수년째 불편을 겪어온 주민들의 피해가 보다 장기화되지 않도록 시공사가 혼자 지고 있는 짐을 T사가 나눠 질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애초에 옥내배선용 전선으로 HFIX를 선택하고, T사의 자재를 승인한 발주처 G공단도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양시 아파트 단지에 제품이 납품된 2013~2014년은 이미 HFIX의 수분침투 누전 문제가 이슈화돼 규격 개정까지 이어졌을 만큼 논란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이런 때에 굳이 옥내배선용 전선으로 HFIX를 선택한 G공단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시공업계 관계자는 “구식 HFIX의 단점이 명백히 알려진 상황임에도 제품을 선택한 발주처는 갑의 위치를 이용해 시공업체에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이는 매우 구시대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다. 발주처가 단점이 분명한 제품을 쓰겠다고 선택했다면, 그로 인한 문제도 책임져야 한다”며 “업계 차원에서 이 같은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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