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사・소비자 구분 없어지는 프로슈머 확대 필수
에너지원간 결합서비스나 타상품과의 결합 어려워

최근 들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기업들이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작업 경쟁력을 높이는 차세대 산업혁명, 즉 ‘소프트파워’를 통한 공장과 제품의 지능화라고 정의된다.

물론 정의만 놓고 보면 의미가 명확하지가 않지만, 기계와 제품이 지능을 갖게 되고 이들이 인터넷 네트워크로 연결돼 학습능력을 갖게 된다는 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에너지 분야에도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점차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ICT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에너지 분야에서는 크게 뒤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한 조찬강연회에서 조석 전 한수원 사장은 “앞으로 에너지산업이 발전하려면 ICT와의 융합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방식의 전력산업구조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ICT 분야의 강국이라고 하지만, 한전의 스마트계량기 하나만 바꾸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을 보면 에너지 분야에서만큼은 ICT 융합이 크게 뒤떨어져 있는 게 사실”이라며 “발전회사와 소비자의 구분이 없어지는 프로슈머가 확대되고, 다양한 가격구조가 가능해지려면 ICT 융합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에 따른 전력산업의 변화’

ICT 기술 발달로 전력산업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IT, 통신, 금융, 유통 등 비에너지기업이 ICT 기술을 활용해 전력산업에 진출하고, 전기차, 수요반응, 스마트홈 등 저탄소 기술을 토대로 신사업, 신비즈니스를 창출하고 있다.

또 분산발전 및 ICT 기술을 활용한 에너지 프로슈머의 등장과 수요자원 시장 개설 등의 시장 변화에 따라 에너지 공급자와 수요자 간 경계가 와해되고 있다.

비에너지기업인 구글, 애플, 테슬라, 소프트뱅크 등이 전력산업에 진출해 기존 전력사업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고객들도 분산전원, V2G, ESS 등 다양한 전력 생산 및 공급설비를 갖추면서 수동적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변화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직접 신재생 설비건설과 운영에 자금을 투자하고 전력판매를 통한 수익을 공유하는 간접적인 참여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조환익 한전 사장은 2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틸리티 산업은 위기다. 프랑스의 전력회사인 EDF는 최근 6년간 영업이익이 14% 줄고 시가총액도 66%나 떨어졌고, 독일의 전기·천연가스 공급회사인 RWE 역시 104%나 영업이익이 감소했다”며 “기후변화 대응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받고 있고 지진 등으로 원전은 축소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력수요는 줄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로 무장한 ‘뉴 플레이어’가 전력산업에 야금야금 침투하면서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GE파워의 사미 카멜 박사도 최근 한 포럼에서 “점차 선진국을 중심으로 기존 전력산업의 변화를 요구하는 요인들이 많아져 에너지 효율과 지붕 태양광 발전, 에너지저장, 소규모 분산전원, IoT 기술과 연계한 빅데이터 등이 주목받고 있다”며 “전력산업도 이제 제조기술을 통한 부가가치보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기술이 유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너지와 ICT의 융합, 에너지전환에 나서는 선진국들’

일본의 경우 전력시장 완전개방을 통해 전력산업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2016년 4월 전력소매시장을 전면자유화 한데 이어 올해 4월부터는 가스소매시장이 전면 자유화되면서 전력과 가스, 통신요금이 결합된 요금제가 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일본 전력·가스 시장자유화 추진 현황’이란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전력소매시장이 전면 자유화된 2016년 4월부터 2017년 1월 31일까지 전력소매부문 수요가들이 전력공급자를 주요 전력회사에서 신규 전력사업자로 변경한 사례가 282만100건에 달했다. 계약변경 수요가 비중은 총 계약 건수의 4.5%에 달하고 있다.

신규 전력사업자는 도쿄가스, 오사카가스, JX Nippon Oil & Energy, KDDI, J Com, 소프트뱅크 등이 대표적인 기업들로, 대부분 가스회사나 통신회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올해 4월 가스소매시장이 전면 자유화될 경우 전력시장 자유화로 기존 전력수요가들의 이탈을 경험한 전력회사들이 가스소매시장 진출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측된다.

전력회사와 가스회사간 전력·가스 결합방식의 요금제를 제시함으로써 요금인하 경쟁도 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전력회사들은 기존 가스요금보다 저렴한 요금제를 제시하고 있으며, 가스회사도 기존 고객 이탈방지를 위해 새로운 요금제를 개발하고 있다.

독일 메르켈 정부는 2011년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결정하고, 대신 신재생으로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력망을 확대하고, 신재생 FIT 지원금을 인상하는 한편, 효율향상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역시 Exelon, Con Edison 등 전력회사들이 4차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빅데이터, 인공지능, 무선통신 등을 활용해 설비를 디지털화하고, 데이터 분석을 통한 전력설비 효율화 및 최적화를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전력회사 중 50~70%가 IoT와 머신러닝 기술을 현재 적용하거나 향후 3년 이내에 도입할 계획이다. Exelon은 GE와 공동으로 발전소 디지털화를 진행 중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우리나라의 노력과 한계’

우리나라는 한전과 발전회사 등 공기업과 두산중공업 등 일부 민간회사들을 중심으로 4차 산업물결에 대응하고 있다.

한전은 올해 R&D 투자비 4360억원 중 IoT 에너지플랫폼 등 4차 산업분야와 에너지 신사업 분야에 약 1060억원 이상을 투자하고, 전력에너지 분야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ICT 융복합 혁신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고장예지, 고장자동복구 등을 위한 ‘차세대 지능형 전력망 제어시스템 구축’ ▲신재생 발전원과 ESS를 활용한 ‘배전급 EMS(Energy Management System) 개발’ ▲실시간 계통진단을 위한 전력정보 시각화를 이용한 ‘송변전 종합 예방진단시스템 개발’ ▲빅데이터 처리와 AI 활용 고장 및 수명 예측 등 현장 문제를 해결을 위한 ‘GE Predix 기반 설비 최적 운영 기술 개발’ 등을 추진하고 있다.

발전사들도 IoT기술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발전소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동서발전은 발전산업 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기 위해 두산중공업, UNIST, 한국전력기술, 한전KDN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특히 두산중공업과 발전소 원격감시 서비스(RMS : Remote Monitoring System)운영 협력을 통해 당진 화력발전 5~8호기와 울산 복합발전 4호기의 RMS 서비스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전력산업이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력소매시장이 독점체제여서 에너지원간 결합서비스나 에너지원과 타상품, 부가가치 서비스가 결합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본부장은 “4차 산업혁명과 에너지신산업 활성화를 위해선 전력소매시장의 개방을 서둘러야 한다”며 “지금처럼 한전이 전기판매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구조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공급자와 소비자간 양방향 시스템이 구축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NEWS & INFO) RMS (Remote Monitoring Service)

발전 플랜트는 보일러, 터빈, 발전기 등 주기기를 포함해 수천 킬로미터의 전선 케이블과 전동모터, 밸브 등 수백 만 종류의 복잡한 설비로 구성돼 있다. 발전소 운전 담당자는 수백 만 가지 설비 모니터링을 위해 2만 여 개의 센서를 읽고 컨트롤 하며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한번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 분석과 해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큰 비용이 발생하는 구조이기에 이상 징후를 조기에 예측할 수 있는 것이 경쟁력이다.

RMS(Remote Monitoring Service)는 다양하고 복잡한 발전소 운영 프로세스를 중앙에서 원격으로 실시간 관리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이다. 발전소 운영에 있어 시공간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든 예방(검진)과 처방이 가능한 원격 주치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두산중공업은 2014년 창원 본사에 ‘발전소 원격 관리 서비스 센터(RMSC, Remote Monitoring Service Center)’를 개설한 데 이어 2015년엔 서울 사무소에 ‘소프트웨어 센터’를 열고, 이 두 곳에서 발전소 운영 관련 정보를 빅데이터화 하고 이를 토대로 발전소 이용률과 효율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두산중공업 RMS팀은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터빈 진동, 온도 상승 등 조기 이상 징후를 포착해 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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