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가동을 안 해도 갑작스러운 수요급증이나 발전기 고장 등에 대비해 예비발전기를 보유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예비발전기는 필요시 언제든 가동될 수 있는 발전기여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많을수록 여유가 있는 것이다. 전력예비율이 필요한 이유는 수요예측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예비율이 안심할 만한 수준인가.

적정설비예비율 22% 과연 적정한가

우리나라는 2014년 여름 이후 설비예비율을 15%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수립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적정 설비예비율을 22%로 설정했다. 최소예비율 13%에 불확실성 대응 예비율 9%를 고려한 것이다.

최소예비율이란 발전원 구성, 발전기별 특성, 석탄화력발전 성능개선, 재생에너지 변동성 대응 등을 고려해 산정한다.

불확실성 대응예비율이란 연도별 수요 불확실성, 발전설비 건설 시 발생할 수 있는 공급지연 등을 고려한 수치다.

계통운영자 입장에서는 예비발전기가 많을수록 계통운영에 여유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22%의 예비율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 이탈리아의 전력설비 예비율은 136.2%인데, 이처럼 많은 여유발전용량을 확보하는 게 안전할 수 있지만, 엄청난 투자와 전기요금 부담이 뒤따른다.

또한 안 돌리는 발전소에도 발전소를 짓는 데 들어간 투자비를 보상해줘야 해서 적정 수준의 예비력과 예비율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적정설비예비율과 관련해서 미국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에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과 같이 다른 나라와 전력시스템이 연결돼 있지 않은 경우에 18.5%가 적정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는 전력공급지장확률(LOLP, Loss of Load Probability) 0.1일/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1년에 0.1일 정도 정전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LOLP가 0.3이어서 적정 설비예비율은 18.5%보다 낮게 설정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나라와 계통여건이 비슷한 호주도 적정예비율을 18%로 설정하고 있고, 미국의 텍사스주나 PJM의 경우도 각각 13.75%, 15.7%로 설정해 놓고 있다.

만일 우리나라도 18%로 설정한다면 약 4%에 해당하는 4GW의 예비발전기를 추가로 건설하지 않아도 된다.

설비예비력과 운전예비력, 순동예비력

예비력은 설비예비력과 공급(운전)예비력, 순동예비력 등으로 구분된다.

설비예비력은 그야말로 발전설비총량에서 전력수요를 뺀 수치다. 우리나라 현재 총 발전설비는 1억1695만kW다. 지난 7월 24일 최대전력수요가 역대 최대인 9238만kW를 기록했을 때 설비예비력은 2457만kW에 달한다.

공급예비력은 사고 또는 예방정비 등으로 실제 가동이 가능한 설비에서 전력수요를 뺀 예비력을 말한다. 이날 공급능력은 9957만kW여서 공급예비력은 719만kW였다.

순동예비력은 각 발전기의 여유출력의 합을 말한다. 발전기는 주파수를 조정하기 위해 자신에게 부착된 조속기를 이용해 시스템 주파수를 감지하고, 주파수가 높으면 출력을 낮추고 낮으면 출력을 상승시킨다. 즉 변동하는 순간마다의 예비력으로, 일반적 시스템운용에서 매 5분 간격으로 발전기 출력의 합과 가동 중인 발전기의 정격용량을 파악해 계산한다.

미국 북미전력신뢰도공사(NERC)의 경우 순동예비력을 150만kW만큼 확보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갑자기 발전기가 고장을 일으켜도 여유출력을 이용해 주파수를 회복할 수 있고, 수요가 변동하더라도 150만kW의 여유출력을 이용해 출력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통전문가들은 한 자릿수의 예비율을 확보하는 것보다 5분마다 순동예비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적정 순동예비력 확보가 관건

운전예비력 가운데 5분마다 여유출력의 합인 순동예비력은 설비예비력과 마찬가지로 많을수록 전력계통 운영에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과다하게 확보하면 무부하운전을 하는 발전기와 낮은 출력에서 운전하는 발전기가 많게 돼 연료비 낭비를 초래한다.

시스템 운용에서 설비예비력은 큰 의미가 없다. 특히 설비예비율은 1년의 최대수요에 대해 나타내는 수치여서 수요가 낮은 3월에 예비율이 200%라고 나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스템 운용에서 현재의 예비율이 한 자릿수라고 발표할 때는 어떤 수치를 사용해야 하는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 1년에 몇 시간 동안 예비율이 한 자릿수이면 발전설비가 부족한지, 또는 전력수급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김영창 전 아주대 교수는 “전력수급계획을 수립할 때는 설비예비율이 중요한 개념이지만, 실제 시스템을 운용할 때는 순동예비력이 중요하다”며 “단순히 한 자릿수 예비율이라고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지 말고, 시스템 운용이 잘되고 있는지를 정확히 따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