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신문 송세준 기자] ○…비록 자연 상태를 보는 시각은 달랐지만, 토마스 홉스(1588~1679)와 존 로크(1632~1704)의 사회계약설이 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이론적 기초를 형성했다는 데에는 다툼의 여지가 없다.

사회계약설은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는 국민주권사상으로 이어지면서 근대 시민국가를 세우는 토대가 됐다.

홉스는 폭력과 공포로 점철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극복하기 위해, 로크는 자연권(생명·자유·재산)을 보장받기 위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봤고, 이는 왕권신수설에 기반한 절대왕정을 무너뜨리는 근대 시민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간단히 말하면, 개인은 국가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대신 국가는 개인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주는 게 사회계약의 핵심이다. 국가와 개인은 계약으로 인해 서로 권리와 의무가 생긴다.

오늘날 국가의 역할은 국민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누구나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것도 사회계약설의 영향력 덕분이다.

홉스는 명저 ‘리바이어던(Leviathan)’에서 개인의 생명을 보호하는 강력한 안전장치를 국가로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국가의 절대권한(권력)을 용인하는 대신 개인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내는 능력이 없다면, 즉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국가의 정당성은 사라지고 급기야 해체된다.

로크도 비슷하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할 경우 국가와 개인이 맺은 사회계약은 마땅히 파기해야할 대상이다.

국가의 권위나 힘이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실제적 힘에 달려있는 ‘조건부’ 권력에 불과하다는 것이 사회계약설의 귀중한 가르침이다.

○…요즘 전선업계에선 소방용 케이블에 대한 안전기준 논의가 한창이다.

단순히 정리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소방용 케이블의 성능기준을 높이자는 것이다. 정부도 이에 발맞춰 기준 개정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불에 타지 않고 잘 견디는 것을 의미하는 ‘내화(fireproof)’, 불이 붙어도 쉽게 타지 않는, 즉 연소가 잘 되지 않는 ‘난연(flame resisting)’, 유독가스 발생을 억제시키고 연쇄·연소 반응을 중단시키는 ‘방염(flame retardancy)’ 등이 소방용 케이블에 요구되는 대표적인 성능들이다.

화재시 비상등과 화재경보기, 스프링클러, 환기장치, 대피 시설 등을 지속적으로 작동하려면 전원 공급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선 케이블 기능이 평상시처럼 유지돼야 한다.

케이블이 일부 타더라도 연기나 유독가스가 적게 발생해야 짧은 시간에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다.

굳이 복잡한 설명 없이도 소방용 케이블이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제품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 시장에 판매·유통되는 제품들은 국제 수준보다 훨씬 낮은 20년 전 기준을 따르고 있다. 오래된 기준이니 당연히 여기에 부합하는 제품의 성능이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형 화재와 여기에 뒤따르는 인명·재산 피해를 계속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굳이 사회계약설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 의무이자 존재 이유다. 이는 결코 무너질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원칙이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