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에너지․전기공학과 교수
김성수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에너지․전기공학과 교수

폭염으로 인하여 전력수급 위기가 거론될 정도로 연일 전력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상기후가 나타나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탄소감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탄소국경세의 도입을 거론하고 우리나라에서도 탄소중립, RE100, 재생에너지 직접거래제도(PPA) 등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의 배출은 80% 이상이 에너지의 사용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탄소감축의 핵심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데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2002년 도입한 발전차액지원제도(FIT)부터 현재의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까지 지속적으로 적용해왔지만 2019년 기준 재생에너지의 발전량 비중이 약 5%일 정도로 다른 나라에 비하여 매우 낮은 수준이다. 바람이나 햇빛의 조건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불리하기도 하지만 발전소입지와 관련된 복잡한 사업절차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재생에너지의 확대에 어려움이 있다.

먼저 가장 눈에 띄는 어려움은 전력망 구축에 있다. 최근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태양광설비의 경우 전력망에 연결이 지연되어 대기하고 있는 물량이 어마어마하다. 이 문제는 아직까지 전력망계획이 과거 원전이나 석탄발전소와 같이 10년 가까이 소요되는 발전소를 연결하는 중앙집중식 체계에 머물러 있어서 2~3년 내에 건설이 가능한 재생에너지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또 다른 문제로 제주도 재생에너지 출력제한 문제를 들 수 있다. 전력수요가 낮은 주말에 태양광 발전이 증가하면서 계통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하여 운전되는 화력발전기의 출력을 고려하다보니 풍력발전기를 중심으로 출력제한이 이루어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화력발전기가 담당하던 계통신뢰도 기능의 일부를 재생에너지나 에너지저장장치가 담당할 수 있도록 시스템과 제도를 변경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하여 재생에너지를 해외와 같이 크게 늘려야 하는데 재생에너지 비중이 증가할 경우 육지에서도 제주도와 유사한 문제가 나타날 것이므로 제도적인 정비가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전력망을 건설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재생에너지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그럼에도 전력망 용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효율적으로 출력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재생에너지의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현재 발전소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전력수급계획을 전력망계획 중심으로 전환하고 계통운영 및 전력시장제도의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자를 포함하여 망사업자인 동시에 독점구매자로서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한전, 전력시장 및 계통운영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력거래소를 감독하는 기능의 강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총괄 지휘하여 올바른 길로 이끌 사령탑의 기능이 매우 부실한 상태이다. 소수의 비상근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전기위원회는 기능이 미약하고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정부는 순환보직으로 인하여 전문성이 부족하다. 따라서 장기적인 대응보다는 단기적인 대응책만 남발하기 일쑤다.

우리나라 전력시장을 설계하는 초기에 해외의 컨설팅회사가 “독립적인 규제기관의 설립”을 수차례 강조했었지만 당시에 우리나라에서는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전력시장이 개설된 지 20년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 보면 너무나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다. 그러다보니 에너지 정책은 구호로만 존재한 경우가 흔하다. 스마트그리드, 녹색성장, 에너지신산업 등 거창한 구호를 내세웠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이 흐지부지된 경우가 많다.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목표가 단순한 구호가 되지 않으려면 전문성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한전과 전력거래소 그리고 다양한 사업자들을 조율하는 독립적인 규제기관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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