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신문 정세영 기자] “국산제품도 일선 현장에 적용해야 내구성이나 품질을 개선할 수 있는데 너무 책임 위주로 얘기하니 발주처 담당자들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고쳐주면 그만일 텐데 말이죠. 어느 정도 유연성을 발휘해야 국산제품이나 장비들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얼마 전 취재 차 만난 어느 중견기업의 대표는 ‘국내 수소산업의 국산화 현황’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수년 전 수소사업에 진출한 이 기업의 대표는 이런 식이면 국비를 투입해 국산화에 성공한들 무슨 소용이겠냐는 말도 곁들였다.

올해 수소 유통인프라 구축시장은 정부의 강력한 수소모빌리티 드라이브에 힘입어 정부와 지자체의 발주물량은 여느 때보다 많은 수준이다.

지난 4월 당진 수소출하센터 준공에 이어 올해만 2개의 수소출하센터 건설이 예정돼 있으며, 수소생산기지 사업공고도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밖에 수소충전소 구축 사업도 지자체를 중심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산제품이 현장에서 곧잘 배제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는 자조 섞인 얘기가 업계로부터 심심찮게 들려온다. 국가 R&D로 개발해 실증까지 마친 국산제품이 시장의 검증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납품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지적이다.

발주처가 선호하는 외산이 품질 면에서 문제가 없다면 납득이라도 하겠는데 정작 외산이 가진 문제점도 만만치 않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일선 충전소가 요구하는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운전은 외산도 그 정도 수준으로 운전을 안 해봤기 때문에 검증이 안 된 것은 마찬가지라는 토로다. 심지어 개런티를 요구하면 아예 납품을 거부한다는 업계 관계자의 지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일껏 거액의 세금을 들여 개발한 순수 우리 기술이 시장에서 외면 받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이럴 거면 애초에 국가 R&D를 왜 시행하느냐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국내 수소 산업은 이제 막 시작단계를 넘어서고 있다. 국가 R&D를 통해 개발된 국산제품의 사후관리가 적절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힘들여 개발한 우리 기술이 사장되고 말지도 모른다. 긴 호흡에서 국내 수소 생태계의 조기 조성을 염두에 둔 지원책이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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