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원고인 ”천만 분산에너지 시대, 우리는 준비되어 있는가“에서 필자는 분산에너지의 급격한 확산에 따라 배전 중심의 분권화된 운영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고, 새롭게 등장할 배전계통운영자(Distribution System Operator; DSO)의 역할이 중요해진다고 역설하였다. 이번 원고는 지난 원고의 후속편으로서 분산에너지 활성화에 따른 Virtual Power Plant(이하 VPP)의 중요성과 지원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VPP는 왜 필요한가?

VPP에 대한 개념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물리적으로 한 곳에 존재하지 않는 다수의 분산에너지원을 하나로 묶는다(Aggregation)는 개념은 항상 공통적으로 언급된다. 이 특징 때문에 '가상발전소' 혹은 '집합발전소'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으며, 미국에서는 최근 FERC Order 2222로 인해 Distributed Energy Resource Aggregation(DERA)라는 용어의 사용이 공식화되었다. FERC Order 2222은 우리나라에서는 가상발전소라고 불리는 개념인 DERA를 분산에너지원을 집합하여 전력도매시장에 참여하는 주체로 정의하였고, 이들이 시장참여자로서 입찰하는 것을 허용하는 규제완화 및 관련 세부규정 개선사항들을 담고 있다. 왜 이런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유럽이나 미국과 같이 재생에너지가 Grid Parity에 도달했다고 보아도 무방한 지역들에서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보조금 수준이 점차적으로 낮아지고 있고 세제 혜택들도 서서히 일몰되고 있다. 따라서 소규모 재생에너지 기반의 분산에너지원들도 전통적인 발전원들과 유사하게 보조금 제도가 아니라 전력도매시장 참여를 통한 수익구조를 고민해봐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분산에너지원들이 일정 규모 이상 모여 VPP를 구성하고 전통적인 발전원에 준하는 수준의 제어능력을 갖추게 될 경우 전력도매시장 참여를 통해 에너지정산금, 보조서비스 정산금, 용량 정산금 등을 받을 수 있게 되는데 이 정산금들을 통한 수익이 기존 보조금 수익을 상회한다면 VPP 산업의 성장과 함께 분산에너지가 확산될 수 있는 기본여건은 충족된 것이다.

한편, 전 세계 각국의 계통운영자들은 분산에너지의 증가로 인해 가시성(Visibility) 문제, 변동성(Volatility) 문제에 만성적으로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분산에너지원들을 전력도매시장의 체계 안에 편입시키고 정규 시장참여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직면한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하고자 다양한 방식으로 유인책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재생에너지원들이 전력시장에 예측치를 입찰하고 오차가 정해진 기준 이하일 경우 예측정산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시행하려고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VPP는 언제부터, 어떻게 하면 활성화될 수 있을까?

재생에너지 발전량 예측제도와 같은 인센티브 제도의 시행이 예정되어 있지만 VPP 비즈니스를 준비하는 사업자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재생에너지 사업구조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재생에너지 사업은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본을 최대한 낮은 이율로 조달한 뒤에 최대한 안정적이고 고정적인 수익을 통해서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직 재생에너지 시장이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기고정가격계약과 같이 최대한 리스크가 없는 방식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을 때 이자율이 낮아져 수익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안정적인 계약을 포기하고 전력도매시장에 들어오기에는 현재 정부가 제시하는 예측 정산금 수준은 너무 낮다. 사업자들이 가격변동 위험을 무릅쓰고 RPS 시장에서 도매시장으로 넘어올만한 수준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추가로 지급되어야 한다. 게다가 제주도와 같은 곳은 VPP들이 도매시장 입찰에 참여하는 순간 출력제어 지시를 이행할 의무가 발생한다. 용량 정산금이나 예측 정산금, 보조서비스 정산금 등을 통해 기대수익을 보상해준다고 하더라도 사업자에게 출력제어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황은 리스크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재생에너지원에 대해서 계통상황에 따른 출력제어 없이 확정 수익만을 제공할 수는 없다. 제5차 신재생에너지기본계획에서도 언급되었듯 Grid Parity 달성과 함께 주류전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도 같이 늘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해법은 한 가지다. 계통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지역부터 VPP 제도를 활성화해 분산에너지원들을 시장에 편입시키고 이들의 리스크 증가로 인한 금융비용 상승을 상쇄할만큼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지급되어야 한다. 전기요금 인상 우려로 인해 전력산업 내 비용반영이 제한되어 있다면, 전력산업 생태계 밖에서 세액공제와 같은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런 추가적인 정부지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서 VPP 사업이 활성화되는 시점은 Grid Parity 도달 한참 이후이지 않을까?

얼마전 발표된 정부의 K-반도체 벨트 전략에는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파격적인 세액공제 혜택이 언급되어 있다. 탄소중립이 우리나라의 중요한 정책 어젠다라면 그 수단 중 하나인 분산에너지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에도 반도체 못지 않은 혜택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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