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구리, 철광석, 곡물 등 원자재 가격의 상승세가 가파르다. 수퍼 사이클 가능성도 거론된다. 수년간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수퍼 사이클의 경우 급증하는 수요를 공급이 원활하게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다. 석유시장에서도 70년대 이후 또 한 차례 수퍼 사이클이 형성된 적이 있다. 90년대 배럴당 15~20달러의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새로운 유전을 탐사하고 개발하는 데 대한 투자가 저조했던 상황에서 2000년대 초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른 석유소비 급증으로 유가는 2000년 20달러에서 2008년 150달러까지 상승했다.

원자재 중에서도 석유는 또 다른 특성을 가진다. 섬유와 플라스틱, 방역물품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물품이 석유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원료로부터 수송 연료에 이르는 다양한 쓰임새로 인해 유가 변동은 경제 전반에 더욱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백신 접종 등에 따라 석유수요가 회복되면서 최근 국제유가 또한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시장의 예상대로 하반기 중 상승세가 심화된다면 물가 등 경제적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석유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거니와 앞으로도 이러한 상황에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인구 증가 및 개도국 경제 성장으로 석유수요는 2040년까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기차가 보급되어 내연기관을 곧 대체하고,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용이 늘면서 석유소비는 감소할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량을 대체하기에는 장시간이 소요되며, 대대적인 인프라의 구축과 기술 혁신도 필요하다. 신재생에너지 또한 주로 발전용으로 사용되므로 연료와 석유화학 원료 등으로 쓰이는 석유와는 대체재 관계에 있지 않다. 따라서 석유는 향후 수십 년 동안 산업과 경제를 아우르는 주된 에너지원의 역할을 지속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수요를 뒷받침해줄 공급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석유산업에 대한 투자 부진이 가속화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014년만 해도 8000억 달러에 달했던 전 세계 상류부문 투자액은 2016년 유가 폭락 후 4300억 달러 수준으로 격감했다. 올해 투자액은 3500억 달러 수준으로 전년에 이어 부진할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에너지 전환 요구 등으로 인해 석유산업에 대한 투자 결정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이다. 각국의 기후변화 정책 추진 및 메이저 석유회사들의 신재생에너지 투자 등으로의 관심 선회 등도 리스크 요인이다. 석유를 발견하여 생산에 이르기까지 7~8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할 때 2016년 이후 누적되어온 투자 감소와 최근의 에너지 전환 흐름에 따른 투자 부진까지 심화될 경우 미래 공급능력 확보가 제약될 수 있다.

공급 능력의 약화와 코로나 이후 급격한 석유수요 회복이 맞물리는 상황은 가까운 장래에 수퍼 사이클 또는 오일 쇼크 형태의 유가 급등을 초래하는 조건이 될 수 있다. 유가 향방에 관한 여러 견해 중 수퍼 사이클 주장에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 경제구조의 특성을 감안할 때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원유의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할 뿐 아니라 산업용 석유소비 비중이 61.8%에 달한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수송용이 57%, 산업용이 31% 정도를 차지한다. 산업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 경제는 유가 상승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원자재 수퍼 사이클 현상과 에너지 전환의 중간쯤에 서서 미래를 바라보자니 에너지 “전환”의 과정에서도 “바뀌지 않는 사실”이 있으며,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석유”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매순간을 함께 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 안목에서의 꾸준한 투자 및 안정적인 확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석유 의존도가 높고 부존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경우 더욱 절실한 문제가 아닐까 한다. 기후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유가 안정과 공급 안보 등을 아우르는 질서 있는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모쪼록 에너지 전환에 대비해나가면서도 변하지 않는 석유의 가치와 본질에 대해서도 국가적 관심이 모아지고 꾸준한 투자도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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