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선언 보다 실행, 산업 부문 등 대전환 강조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

[전기신문 정세영 기자]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저탄소 녹색성장, 에너지전환 등 기후변화·에너지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 특히 탄소통상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며 탄소중립 사회 실현을 위한 정책 과제를 적극 제안하며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본지는 이 연구원으로부터 각국의 탄소중립 추진 동향과 우리의 대응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탄소중립 이슈가 환경 문제를 넘어 통상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탄소중립은 화석에너지 기반의 경제·사회시스템에서 벗어나야 달성할 수 있는 목표입니다. 전 세계 120개 국가가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EU, 미국, 한국, 중국, 일본 등 기후위기에 책임이 크면서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국가들이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은 환경문제를 넘어 통상, 외교, 산업, 에너지 등 모든 부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지키지 않아도 제제가 거의 없었지만,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이상 국제사회의 탄소규제가 구체화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주요 선진국의 탄소중립 정책 추진 동향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신다면.

“EU는 올해 6월까지 입법절차를 거쳐 2023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시행하고, 2024년부터 배터리 부문에서 탄소발자국 표시제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도 무역대표부(USTR)가 발간한 무역정책의제를 보면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도입해 기후변화 대응에 무역정책을 사용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EU와 미국은 반도체·배터리와 등 미래 핵심산업을 자국 내에서 공급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데 공급 전 단계에서 노동과 환경 기준을 강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탄소중립 달성여부를 자국 산업의 경쟁력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일각에선 탄소국경조정제도가 WTO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EU도 WTO에 어긋나지 않는 방향으로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설계하기 위해 고심할 것으로 보입니다. EU에서 ETS를 통해 역내 기업에 부담시키는 탄소비용을 해외 기업에도 적용하는 방식을 채택하면 설계 방식에 따라 WTO 내국민대우 원칙을 지킬 수 있습니다.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에 있어 적용 범주, 대상, 탄소함유량 측정 방식 등 많은 난관이 있어 쉽지는 않겠지만 EU 산업계가 도입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 설계에 개입하면서, 우리의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과 우리 기업의 준비 현황에 대해 전반적인 평가를 해주신다면.

“세계적인 흐름을 못 따라가고 있습니다. 최근 열린 기후정상회의는 기후위기 대응을 2050년에서 2030년으로 앞당기는 자리였어요. 유럽연합이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온실가스 감축을, 미국은 2005년 대비 50~52% 감축을 약속했습니다. 일본은 2013년 대비 46% 감축을 밝혔습니다.

현재 탄소중립 로드맵과 NDC 상향에 대한 논의는 환경부가 시나리오를 발표하는 6월에나 본격화될 것 같습니다. 탄소중립위원회 출범, 탄소중립기본법과 같은 제도 기반 구축도 늦춰지고 있어요. 무엇보다 논의와 준비 과정이 폐쇄적이고, 공개적으로 논의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업은 올해 들어 철강협회, 시멘트협회, 정유협회, 자동차협회 등에서 탄소중립 선언을 하고 있는데, 구체성은 떨어집니다. 이제는 선언만이 아니라 어떤 수단과 방식을 통해 탄소배출량을 줄일지 내용을 만들고, 실행을 해서 성과로 보여줘야 합니다.”

▶탄소중립 추진 과정에서 자동차업계 등 기존 산업 종사자들의 일자리를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완성차업계는 이미 전기차 확대로 인한 산업전환 일자리 대책을 갖고 있어요. 문제는 3000여 개에 달하는 내연기관차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이죠. 이 기업들이 어느 지역에 자리 잡고 있고, 고용구조는 어떻게 되는지, 전기차 확대에 따라 일자리 충격이 얼마나 클지 체계적인 조사부터 진행돼야 합니다. 정부도 전담 부처와 담당 인력, 관련 예산을 마련해야 하구요. ‘정의로운 전환’에 대해 이야기는 하지만 정부책임단위가 없습니다. 정부, 기업, 지자체, 노동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정의로운 전환’ 대책 위원회를 구성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정부와 기업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일본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은 46% 감축을 위해 2030년까지 4억5268만t을 줄여야 합니다. 일본 정부와 산업계가 어떤 경로와 수단을 통해 감축하겠다는 것인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사회 기후위기 대응 수위와 속도가 빨라지고 있고, 우리에게도 남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매번 온실가스 감축 목표만 수립했을 뿐 한 번도 제대로 못 지켰습니다. 이제는 숙제를 미뤄서도 안 되고, 미룰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탄소중립, 온실가스 감축을 최우선으로 에너지, 산업, 교통, 건물, 농업 전반을 대전환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후위기 대응을 늦출수록 무역의존도와 탄소집약도가 높은 한국이 입게 될 충격은 커지고 ‘지연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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