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8일 우리나라가 세계 다섯 번째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지 넉 달이 지났다. 12월 7일 정부는 다부처 합동으로 탄소중립을 위한 3대 정책방향과 10대 추진전략을 발표하였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는 ‘2030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와 함께 탄소중립을 근간으로 하는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을 UN에 제출함으로써 명실상부한 탄소중립 시대를 열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우리나라는 지난 2월 1일 블룸버그로부터 G20 국가 중 3위의 탄소중립 정책 우수국가로 평가를 받았다.

국제 상황도 급변하고 있다. 기후변화 정책 선두주자인 EU는 탄소국경세 도입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고,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공약대로 파리기후변화 복귀를 선언하였다. 미국은 오는 4월 22일 기후정상회의을 소집해 두고 있는데, 그 이전에 역사상 가장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흐스는 올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 예정인 제26차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세계 탄소중립 연합 구성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 전환의 큰 그림은 세계적으로 거의 유사하다. 효율향상을 통한 에너지 수요감축, 에너지 공급의 전기화 및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수소경제 활성화, 그리고, 불가피하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포집 후 이용/저장(CCUS)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구현하기 위한 각국의 전략은 매우 다르다. 섬나라 영국과 일본은 풍력 발전 확대, 태양의 나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태양광 발전 중심이다. 가용한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지혜가 필요하니, 결국엔 혁신으로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먼저 이 기회에 그간의 국가적 숙원이었던 전력계통 인프라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발전 비중이 8%인 현재 상황에서도 재생에너지 접속 대기 문제가 심각하고, 최근 제주도에서의 출력제한 상황을 생각하면 이 문제 해결 없는 전기화 비중 확대 논의는 무의미하다.

전력계통 인프라 혁신은 국내 전력산업의 전반적인 혁신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수소도 이제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그간의 수소차, 연료전지 중심의 수요 확대 정책은 시장을 통한 자생력 강화 방향으로 전환하고, 제철 등 새로운 산업 수요를 대비한 수소의 안정적 공급 혁신에 역량이 집중되어야 한다.

지난해 캘리포니아 산불, 지난달 텍사스 한파 등의 자연재해는 우리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큰 교훈을 남겼다.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 비중이 확대되더라도 에너지 공급 신뢰성 혁신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탄소중립의 일차적 목표는 당면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욕심을 더 내자면, 탄소중립은 우리나라 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면 좋겠다.

1961년 한국전력공사 발족 당시 367MW에 불과하였던 발전설비 용량이 2015년 100GW를 돌파하기까지 발전산업은 우리나라 산업화 시대 중화학 공업의 성장동력이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기화 비중 확대에 따라 앞으로 수백GW 이상의 설비가 증설된다고 보면 이를 또 다른 성장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탄소중립의 과정은 혁신적이어야 하지만 혁명일 필요는 없다. 기업을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의 공감대 형성과 수용성에 기반을 둔 시장친화적인 전략마련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산업부는 최근 들어 에너지 탄소중립 혁신전략과 기술투자 전략 수립에 착수하였다.

짧게는 30년, 길게는 다음 세대를 위한 큰 그림이다. 열정과 사명감으로 무장한 이 나라 집단지성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해 본다.

손정락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 에너지산업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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