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는 공공재인가 사유재인가? 최근 우리 전력산업 곳곳에서 파상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전력산업 제국의 역습을 보노라면, 이 근본적 난제에 대한 씨름의 결론을 내릴 때가 된 듯하다.

우선, 전기가 공공재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가 무엇인지, 대체 어떤 점에서 전기의 공공성이 요구된다는 것인지 살펴보자. 전기가 공공재라는 주장의 가장 중요한 논거는 모든 국민들에게 값싼 전기를 공급함으로써 보편적 복지를 달성해야 한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 다음 논거는 전기라는 재화의 수요와 공급의 속성, 그리고 전력산업의 특성에 기인한다. 주지하다시피 현실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저장이 매우 어려운 전기의 특성으로 인해 전기의 수요와 공급은 매우 비탄력적이다. 그리고, 전력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발전·송전·배전·전력계통의 단계마다 막대한 투자 및 운영 비용이 소요된다. 이러한 특성들은 단일 사업자가 전력산업을 독점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했고, 그와 함께 독점권 남용을 어떻게 억제할 것인지의 문제가 대두하였다.

이에 과거 많은 나라들은 국민들에게 낮은 가격에 보편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공공적 사명을 (알짜배기 독점사업을 민간업체에 맡길 수 없다는 논리와 결합하여) 정부 또는 공기업에 부여하는 한편 전기요금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실시한 바 있다.

하지만 전기의 공공성을 인정하더라도, 전기를 공공재로 규율하여 정부나 공기업이 전력산업을 도맡아야 한다고 결론짓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한 논리가 아니다. 과거 마찬가지로 공기업이 지배하였던 정보통신산업계에서 정보통신서비스를 공공재로 규율하여야 한다는 시각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말이다. 전기는 그 가치가 수요와 공급에 결정되는 전형적인 경제적 재화라는 명백한 사실이 그 공공적 속성을 압도한다. 또한 과거 전력산업규제의 고색창연한 유산을 현실에서 되살리기에는, 그간 전력산업의 첨단기술이 다방면에서 너무나도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더욱이 머지않은 미래에 VPP, 전력플랫폼 등 첨단기술은 전기 수급의 비탄력성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킨다면, 전기는 한층 더 사유재로 인식될 것이다.

사실 보편적 복지를 위한 전기공급은 정부재정이나 기금조성을 통해 사회적 약자에게 에너지쿠폰을 발급하는 경제적 지원방식으로 달성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전력산업의 수직통합구조를 깨뜨렸기에, 단일사업자의 독점권 남용은 이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업자의 용량철회(capacity withdrawal) 등 불공정행위 가능성은 에너지규제기구의 면밀한 전력시장 감시를 통해 제어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전기의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전기의 경제적 재화로서의 속성을 전제로 한 시장체제를 온전하게 작동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

반면에 전기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접근법을 채택하고자 하는 경우 공공 특유의 경영 비효율성 문제와 더불어 자칫 투자자들의 정부보증에 대한 암묵적 기대가 초래할 수 있는 공공부채의 증가 문제에 대한 해법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이는 에너지전환 시대에 막대한 리스크를 안고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 전력산업에서 그저 기우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기공급의 필수설비인 전력망에 대한 중립적이고 투명한 접근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도 큰 이슈가 될 것이다. 나아가 전력산업 4.0의 도래가 임박한 시점에 전력산업 4.0의 필수자산인 전기의 생산과 소비에 관한 대규모 고해상도 데이터에 대한 타 사업자들의 접근기회가 어떻게 봉쇄되지 않도록 할 것인지의 문제도 결코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다.

본편 상영 중인 현시점에 전력산업 제국의 역습이 어떠한 결말로 마무리될지 예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마스터 요다가 되었든 루크가 되었던 남아있는 전력산업계의 제다이들의 고군분투 없이는 당연히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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