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재생에너지 사업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기업들은 유럽의 메이저 석유기업이다. 유럽 최대의 석유회사 BP는 2030년까지 석유가스 생산량은 40% 줄이고, 재생에너지 50GW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프랑스 석유기업 토탈은 한발 더 나아가 2030년까지 100GW의 재생에너지 설비를 갖추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의 총 전력 설비용량이 약 125GW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사업 규모는 엄청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석유기업들이 앞장서서 재생에너지 사업을 확대하는 것일까? 언뜻 생각하면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 석유 소비가 줄어 석유 기업의 실적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석유 수요를 잠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석유 산업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재생에너지는 발전용 에너지로서 석유가 주로 쓰이는 수송용 에너지 시장을 거의 잠식하지 않는다. 풍력이나 태양광으로 아직은 선박과 항공기를 구동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합성섬유, 합성수지, 아스팔트 등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석유기업은 재생에너지 사업을 통해 이미지를 개선하고 기업 차원에서 탄소중립 선언을 가능하게 하면서 지속가능성에도 도움을 준다. 기후변화 대처라는 시대적 당위에도 부합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라는 경제적 측면까지 감안하면 매력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동안 육상과 해상에서 대형 석유생산 시설을 건설해온 석유기업들의 기술력과 사업 경험이 재생에너지 사업을 할 때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과거 북해에서 원유를 생산하던 석유기업들이 오늘날 풍력 시장을 선도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유럽의 에너지 기업들은 북해 원유 생산을 위한 해양 플랜트 사업과 함께 성장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해양 플랜트 산업이 침체하고, 이로 인한 불황과 실업 등의 문제가 나타났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 등은 적극적으로 해상풍력 육성책을 시행했다. 이후 에너지 기업들은 해상 유전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풍력 단지를 설계하는 등 해상 원유 생산시설을 건설하던 석유기업과 조선업의 능력에 힙 입어 해상풍력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했다. 노르웨이의 국영석유회사 에퀴노르는 오늘날 대표적인 풍력발전 업체가 되었고, 석유개발 업체였던 덴마크 오스테드도 세계적 풍력 사업자가 되었다. 이렇듯 석유기업들은 탄소 중립과 기후변화 이슈가 지구촌의 주요 이슈로 존재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하며, 풍력 등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아시아 등지로의 진출을 가속화 하는 등 종합에너지 기업으로의 외연 확장에 나서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동해-1 가스전 등 다수 해상유전 개발 경험을 가진 한국석유공사와 국내 중공업 업계의 협력은 의미 있는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한국석유공사는 작년 9월 두산중공업, 현대중공업과 MOU를 체결했다. ‘동해1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사업 한국형 공급체계 구축 상호협력에 관한 협약’을 통해 향후 해상풍력발전 부문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이 외에도 세진중공업, 우리기술 등 풍력발전 공급 체계에 있는 기업들과도 협력하면서, 한국석유공사는 한국형 풍력 발전의 구심점을 지향하며, 해상 유전 개발 경험과 조선업·중공업 역량의 결합을 꾀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에너지의 모습이 다를 뿐, 산업의 핵심이자 일상을 유지하는 필수재라는 특성은 석유와 다르지 않다. 즉 석유가 전략물자라면 풍력과 태양광 자원 역시 전략적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사업은 에너지 자립도와 에너지 안보를 높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향후 막대한 규모로 성장할 재생에너지 산업이 국가의 성장 동력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도 이 분야의 실력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아직은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사업을 시장에 맡겨두기에는 기술, 자본, 저변에서 세계 수준과 격차가 있다. 해외업체에게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탁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에너지 관련 기관과 에너지 공기업이 이 분야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며 기업간 협조 체계를 강화하며 역량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