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침대에서 뒤척대다가 문득 싱크대 생각이 났다. 정신이 번쩍 들어서 부엌으로 달려갔다. 아뿔싸! 역시 창문이 열려있었다. 전날 저녁에 설거지를 하고 나서 잠깐 환기시킨답시고 창문을 열었는데 이것저것 하다 보니 금세 닫는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린 채 그냥 잠들어 버렸던 것이다. 하필이면 북극에서 내려온 최강의 한파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는다던 바로 그날이었다. 다급하게 싱크대 수도꼭지를 틀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뜨거운 물, 차가운 물 모두. 낭패였다.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다가 검색부터 했다. 간밤에 수도가 동파되었다고 여기저기 아우성이었다. 인터넷에서 확인한 대로 우선 계량기부터 살펴봤는데 다행히 멀쩡했다. 화장실에 가서 물을 틀었더니 아무 이상 없이 잘 나왔다. 보일러도 문제도 아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싱크대만 문제였다. 수도꼭지가 얼었을 때는 바로 뜨거운 물을 부으면 안되고 우선 수건으로 감싼 후 미지근한 물을 부어서 녹이라는 글을 읽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화장실에서 물을 받아서 주전자로 끓이고 수도꼭지 주변을 꽁꽁 싸맨 수건 곳곳에 흘려 적셨다. 김이 모락모락 났지만 날이 추우니 젖은 수건은 금방 차가워졌다. 화장실과 부엌을 쉬지 않고 계속 왔다 갔다 하다보니 오전을 지나 벌써 오후가 됐고, 급기야 저녁이 됐다. 하루종일 수도만 챙겼지만 여전히 물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마른 수건으로 바꿔서 감아놓고 내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누군가 열선을 추천했다. 급히 가까운 철물점을 검색해서 다녀왔다. 수도꼭지 주변을 열선으로 칭칭 감았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열선 센서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설명서를 읽어보니 센서 주변 기온이 일정 온도 이하로 내려가야 작동하기 시작한다는데 부엌 창문을 닫아놓았더니 실내 온도가 그 이상이어서 열선도 무용지물이었다. 역시 실패. 답답한 마음에 공구를 찾아서 이것저것 건드리다가 수전까지 열어봤는데 물이 나오지 않았다. 수도꼭지가 문제가 아니라 그 너머 안쪽 어딘가가 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 손을 떠난 상황이 아닌가 싶어 맥까지 풀렸는데 후배 하나가 전에 비슷한 경험이 있다며 날이 풀리면 그냥 녹아서 물이 나올 수도 있으니 기다려 보라고 했다. 별 도리가 없었다. 당분간 계속 한파가 계속된다는 일기예보가 야속하기만 했다.

추운 날에는 조금씩이라도 물을 틀어놓아야 수도가 얼어붙지 않는다. 비록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더라도 끊이지 않고 물이 흐르면 영하 20도로 떨어져도 동파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몰랐던 사실은 아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신경쓰지 않았던 것이 새삼 후회스러웠다. 흐름이 끊어져 일단 한번 얼어버린 수도를 녹여서 되살리려면 전문업체를 부르거나 기온이 오르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며칠 동안 하던 일을 멈추고 수도꼭지만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구나.”

어디 수돗물만 그렇겠는가? 전기도 흘러야 하고, 공기도 끊임없이 순환해야 한다. 사람도 건강하게 움직이려면 숨쉬고 심장이 뛰어 온몸에 피가 돌아야 한다. 일단 흐름이 멈추는 순간 되돌이키기 힘들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면서 카페에 앉아있을 수가 없게 되자 외출하더라도 시간이 비면 잠깐 들어가서 강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없어졌다. 사람이 들락거리지 않는 점포는 그저 을씨년스러웠다. 유리창으로 들여다 본 텅빈 가게 안 풍경은 썰렁하고 점원의 표정도 무표정했다. 거리도 활력을 잃었다. 흐름이 끊긴 도시는 그저 얼어붙은 것 같았다.

일주일을 기다렸다. 세제와 수세미를 화장실로 옮겨서 바닥에 쪼그려 앉아 설거지를 하면서 버텼다. 기다렸던 그날이 왔다. 기온은 영하권에서 벗어났고, 정말 날이 한껏 풀려있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수도꼭지를 틀었다. 만세! 물이 나온다. 세상에 이게 대체 뭐라고. 수돗물이 콸콸 나오는 게 이렇게 대단한 일인지 감격하고 또 감사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약간 풀리면서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길거리 카페 안에 사람들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하는 모습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제껏 너무 당연하게 보았던 것들에 새삼 감사하며, 흐르는 수돗물처럼 2021년엔 우리 모두 흐름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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