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주 (주)해줌 연구소장
강동주 (주)해줌 연구소장

산업구조가 수평화되고 비즈니스 모델이 플랫폼 기반으로 전환됨에 따라 협업에 대한 필요성은 커지고 있고 전 분야에서 이러한 트렌드가 가속화되고 있다. 다양한 협업툴이 등장하고 있으며 개방형 혁신과 커뮤니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산업은 여전히 수직적 구조의 성향이 강하고, B2C 중심의 시장도 활성화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수직적 사업 환경에서 에너지 분야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상호 협력보다는 상위 전력회사에 우선 납품하기 위한 경쟁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지난 10여 년간 마이크로그리드 기반의 분산형 재생에너지 기술이 집중적으로 개발되고 실증 사업이 확산되며, 에너지 산업도 중장기적으로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비즈니스 생태계 측면에서는 여전히 정부의 지원에 대한 의존성이 높고 민간 부문에서의 자립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규제 기반의 경직된 전기요금 기반 서비스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공공부문 중심의 사업구조를 탈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에너지신산업에 대한 기대를 품고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도전을 시도하고 있으나, 민간영역에서 의미있는 밸류체인을 구축하기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러한 구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스타트업과 중소기업간 협력을 강화하고 개별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융합함으로써 고객군을 확장하고 새로운 부가서비스를 창출하여야 한다. 에너지 산업의 시장가치는 이제 확연히 공급단에서 수요단으로 넘어오고 있다. 공급단 중심의 전통적인 전력산업에서 규모의 경제 효과는 사업성을 확보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였지만, 수요단 중심의 에너지신산업에서는 다양한 프로슈머와 소비자들이 상호작용하는 경험과 가치의 영역으로 전환된다. 2019년 출간된 헤먼트 타네자 저술의 ‘언스케일’이란 책에서 탈규모화의 경제가 진행되고 있으며 에너지 분야도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되었다. 기존 전력계통 단일 수요는 분산전원, xEMS, 수요자원 등에 기반하여 개별적인 능동적 프로슈머로 전환되고 있으며, 점차 자율적인 운전 패턴이 강화되고 있는 흐름에 있다. 기존의 수동적 전력소비자가 능동적 생산 주체로 전환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졌으나, 시장관점에서는 여전히 전통적 전력회사 대비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서비스 아이템과 제도적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규모의 비대칭성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그중의 하나가 바로 협력이다. 수평적인 연대와 연결을 통해 규모를 키우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데, 이는 에어비앤비와 우버 등 공유경제 플랫폼의 등장과 성공으로 일정 부분 증명되었다. 에너지 부문에서도 소규모 분산전원들이 발전단가 차원에서 대규모 발전설비 대비 열위일 수 있으나 친환경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수요지에 인접해있고, 송배전의 비용부담이 낮으며, 전력계통의 정전위험에서도 자유로운 강점이 있다. 여기에 수평적 연계에 의한 유연한 협력 구조가 확보된다면 이를 기반으로 상향식(bottom-up) 규모 확보가 가능하고 변동성과 간헐성이 큰 재생에너지 기반의 전력계통에 유연성(flexibility)을 공급하는 측면에서는 전통적인 전력시스템 대비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 저서 ‘한계비용제로사회’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계통에서는 에너지 생산의 한계비용이 제로로 수렴하기 때문에 전력시장에서의 가치가 에너지서비스에서 유연성 서비스로 옮겨갈 것으로 예측하였다.

이러한 기술적 발전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 생태계의 조성과 활성화 측면이다. 플랫폼으로서 참여자에 대한 수익 공유가 있을 때 협력 유인이 발생하며, 구성원 간의 신뢰가 존재할 때 장기적 협력의 중력이 형성된다. VPP는 에너지 산업에서 이러한 협업의 플랫폼으로 기능하며, 협업을 통해 창출된 수익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프로토콜 경제 개념도 VPP에 적용해 볼 만하다. 에너지 거래의 제한적인 이익률을 보완하기 위해 플랫폼 성장의 가치를 참여자들과 공유함으로써 참여 유인을 강화할 수 있다. 기여도에 따라 플랫폼 성장의 가치가 공유되는 구조를 구현할 수 있으며, 이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 중의 하나인 블록체인을 통해 암호화폐 기반으로 다양한 이종 분야와의 연계도 가능하다. 프로토콜 경제 개념의 적용은 협업 플랫폼으로서의 VPP에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으며, 수요단에서 에너지와 비에너지 부문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 모델 발굴과 소비자 경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필자이력(강동주) ▲연세대 경영학박사 ▲홍익대 전기공학박사 ▲(주)해줌 연구소장 ▲부산대 산학협력중점교수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연구교수 ▲대한전기학회 전기설비부문회 학술이사 ▲한국전기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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