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과연 실현가능할까. 30년 뒤의 일이라 강하게 부정하는 사람도 강하게 긍정하는 사람도 이상해 보인다. 누군가 필자에게 물어오면 1990년에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상황을 예상이나 하셨어요 라고 반문하는 걸로 종종 답변을 흘리곤 한다. 개인에겐 이런 어려운 물음에 답을 하지 않을 자유가 있지만 정부는 그렇지 못하다.

올해가 지나기 전에 파리기후협정의 당사국들은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이하 2050 LEDS)을 수립하고 제출할 것을 요구받는다. 우리나라도 당사국으로서 이 요구에 답하기 위해 작년 한 해 동안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2050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을 운영하고 다양한 강도의 2050년 시나리오 1~5안을 내놓은 바 있지만, 탄소중립 목표와는 꽤 거리가 있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당위적 차원에서 2050년 목표를 전향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뭐가 어려운지, 아예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닌지 하는 비판의 목소리도 거세다.

정부는 정합성의 함정에 빠졌다.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는 순간 당장 올해 하반기부터 수립되는 모든 온실가스, 에너지 관련 법정계획들의 목표가 급격히 상향되고 그 하위의 각종 로드맵 작성 작업은 이에 맞물려 난이도가 크게 상승한다. 과거 정책들의 연장선 상 에서는 절대로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이것이 정책 정합성의 무서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지지부진했던 에너지전환 정책들의 근간을 흔들어버릴 수도 있는 강력한 수인 것이다.

정합성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2050년 탄소중립을 조속히 선언하고 산학연이 똘똘 뭉쳐 준비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우리의 에너지집약적인 산업들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쉽지 않은 목표지만 빠르게 선언을 하고 모든 연구개발과 인력양성, 산업진흥 정책을 하나의 방향으로 일치시키는 것이 불필요한 좌초비용을 줄이는 일이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선결과제가 산적해 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탄소배출량 감축수단에 대해서 우선순위를 고려하여 기술 로드맵을 만들고, 이들 감축수단의 원활한 동작을 위한 시장메커니즘을 구현하며, 감축기술의 상용화와 성숙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미래의 비용을 추정하기 어렵다고만 말고 이를 떨어트리기 위해 어떤 투자를 할 것인지, 부처 간의 역할분담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관련되어 어떤 조직이 어느 정도의 규모르 필요하게 될 것인지 등 당장 떠오르는 것들만 해도 이 정도이다. 그리고 전력부문과 배출권 거레제가 연결되고 전기요금에 탄소배출량 감축 이행비용 등이 적절히 반영되도록 하는 굵직한 전력 도소매시장 개편 관련 쟁점과제들도 산더미이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을 잃어가는 석탄발전원과 같은 좌초전원이 적절한 시점에 퇴장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기반도 같이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비용-효율적인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은 전력 부문과 수송·냉난방과 같은 타 부문과의 섹터 커플링(Sector Coupling)인데, 육지에서도 Curtailment가 발생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는 2030년 전후에는 재생에너지 잉여전력을 다른 부문에서 활용하는 체계가 필수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정상적인 가격신호를 통해 섹터 커플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전력산업 뿐 아니라 모든 에너지산업 부문의 제도를 A부터 Z까지 뜯어고쳐야하는데, 시간이 없다. 추가적으로,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온갖 저탄소 기술들을 빠르게 실증하고 실전에 투입해야하는 급박한 일정표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이 무거운 짐을 넘겨받을 차세대 전문인력 양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결국 2050년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지금 현역인 전문가들 뿐 아니라 아직 사회에 나오지 않은 청년인재들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민하고 주저하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프로필

▲서울대 공과대학 전기공학부 졸업 ▲산업부 제1차 분산에너지활성화 로드맵 워킹그룹 전문위원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 저감위원회 전문위원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국내 대응 협의회 전문위원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