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와 방어보다 전략적 의견 개진과 공략적 관철이 필요

“전 세계가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해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

EU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이 깃발을 들고 국경탄소세 부과에 시동을 걸었다.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 제로를 목표로 하는 유럽 그린딜의 핵심요소가 탄소국경조정이다. 이는 탄소배출에 요금을 부과하는 매커니즘이 없는 국가의 제품을 유럽이 수입할 때 관세를 부과하거나 재정 조치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들은 시장경쟁력을 잃지 않으려고 엄격한 탄소 규제를 피해 덜 엄격한 지역으로 생산시설을 옮기고 있다. 이 경우 탄소규제 정책은 작동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총량은 줄지 않고 발생지역만 이동되는 탄소누출이 발생한다. 시멘트, 철강, 알루미늄 등 국제 거래가 활발한 에너지집약 부문의 누출률은 최대 90%다. EU는 탄소누출 방지를 탄소국경조정의 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속내는 탄소누출로 EU 국가의 산업경쟁력이 떨어지는 걸 두고 볼 수 없는데 방점이 있다.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법적, 윤리적 테두리 안에서 요모조모 시도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오히려 노력을 회피하는 정부가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직무유기다.

EU는 2020년 3/4분기에 탄소국경조정 초안을 작성, 의견 수렴 후 2021년 상반기 채택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EU가 밀어붙인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일종의 위장된 보호주의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보호주의 관세를 금지하고 있다. 탄소국경조정이 보호주의 관세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II:2(a)조의 광범위한 국경세 조정 개념에 탄소국경조정 포함 여부도 논의가 필요하다. 배출권 구입비용이 조세나 과징금에 해당하는지, 배출권 무상할당이 보조금협정에 위반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탄소국경조정이 현실화되려면 적용대상과 범위, 각 국의 탄소제약 수준을 평가하는 원칙과 기준 그리고 주체도 결정해야 한다. 탄소국경조정의 설계와 이행은 공정성, 투명성, 예측가능성을 보장하고 영향을 받는 국가들에게 참여기회는 물론 항소 및 검토 절차를 제공하는 프로세스도 결정해야 한다.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 결정되고 나선 바꾸기 어렵다. EU는 각 국의 의견을 청취 중이다. 결정되기 전에 우리의 주장을 전략적으로 관철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의 주장이 있어야 한다.

탄소국경조정의 옳고 그름을 다투는 것과 별개로 대한민국의 산업경쟁력은 지켜야 한다. 각 산업별 혹은 기업별로 대응하기엔 역부족이다. 상대는 온 가족이 함께 나서는데 달랑 아이만 홀로 나서게 할 순 없다. EU의 탄소국경조정 논의는 실행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다. 기회의 활용은 파리협약, RE100, 온실가스목표관리제, 에너지효율향상 의무화제도 등을 아우르는 대한민국형 탄소제약 정책을 정부가 어떻게 입체적으로 설계하는가로부터 출발한다.

교역정책과 기후정책 간 균형을 새롭게 조정하려는 그 어떤 조치도 과도한 보호주의를 정당화할 순 없다. 정부가 이번에도 또다시 공론화를 방패삼아 센 목소리 중심의 거버넌스로 책임회피적이고 선언적인 결론을 내려선 안 된다. 대한민국이 100년, 200년을 뻗어나갈 경제시스템을 갖춘다는 엄중한 책임감으로 최고의 인적 자원과 치열하게 준비해야 한다. 기업은 정부의 노력이 현실을 왜곡하지 않고 미래를 지향할 수 있도록 단기적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말고 실질적 데이터와 민첩성으로 정부와 협력해야 한다. 안으로는 정교한 정책설계, EU를 향해선 전략적인 의견개진, 그렇게 나서면 수십조를 낯설게 투자하지 않고도 연간 무역 1조달러 연속 달성을 지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프로필

▲에너지위원회 위원 ▲외교부정책자문위원회 위원 ▲한국전력학원 이사 ▲과총 과학기술현안대응위원회 위원 ▲건강보험이의신청위원회 위원 ▲조성경 명지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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