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라 하면 무엇이 생각날까? 현대의 그리스에 대해서는 올림픽, 해운과 축구만 생각난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다가 돌연 트로이와 페르시아 전쟁이 신화인지 실화인지 몽롱하게 떠오른다. 이때부터 우리가 그리스 문명이라고 하는 190년 동안을 지나면, 무려 2500년에 해당하는 어두운 역사가 있다. 이 기간 대부분의 그리스는 누군가에게 지배당하던 식민지 상태였다.

소위 그리스 문명이라 일컬을 수 있는 기간은 페르시아 전쟁 전후의 190년 어치의 고전기 그리스일 뿐이다. 가장 이상한 것은 그리스 역사하면 떠올리는 알렉산더 대왕이 실상은 그리스가 아닌 마케도니아의 왕으로서 고대 그리스 문명을 결단내고 2500년의 암흑기를 연 장본인이라는 점이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는 가장 적대적인 사이였는데, 이상하게도 알렉산더 대왕의 호적은 그리스에서 세탁해 만든 것 같아 보인다.

이런 그리스를 대표하는 세 나라가 있다. 테베, 그리고 아테네와 스파르타다. 그 중 테베는 페니키아의 왕자 카드모스가 일족을 데리고 보이오티아 지역에 건너와 토착세력을 싸워 물리치고 세운 나라다. 한국사의 고구려와 같은 방식으로 세워지고 운영된 나라인데, 디오니소스, 안티오페, 암피온과 제테우스, 오이디프스 그리고 후대 스파르타의 무릎을 꺾어 꿀린 에파미논다스 등과 같은 영웅을 낳았다. 테베는 그리스 역사에서 왕조사를 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왕국인데, 후대의 학자들은 이상하리만치 이 테베를 무시하는 경향이 보인다.

아테네는 페니키아의 공주 유로파가 크레타로 건너와 해상을 약탈하다가 옮겨간 왕국이다. 그리스 역사가 빛나는 문명을 세웠다면 그 대부분이 아테네가 이룬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제대로 살펴보면 결국 해적 집단이 사는 방식에서 비롯된 것일 뿐 특별해 보이진 않는다. 다만 아테네는 역사상 존재했던 어떤 해적들보다 대박났고 잘 살던 해적들이라, 그 풍요에서 다른 해적들과는 달리 귀족화된 해적의 풍모를 보여줬다는 점이 달랐다. 마초문화, 식민지 운영과 약탈 경제, 전쟁경제가 만드는 유흥과 귀족 문화 등등. 가령 토론과 투표식 의사결정도 배를 타고 해적질을 하다보면 필연 체득하게 되는 방식인 것이다. 유럽의 거지에 가까웠던 영국이 대항해 시대 약탈 경제를 이룬 이후 만들었던 삶의 방식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되는 장면이다.

셋 중 가장 허접한 것이 스파르타다. 이들은 필시 카드모스에 패퇴한 부족이 보이오티아(테베)의 기름진 평야를 잃고 반도의 끝 펠로폰네소스로 옮겨가 세운 왕국이다. 당했던 그대로 현지의 토착세력인 메세니아와의 전쟁을 통해 그나마 넓은 평원을 차지하고 수많은 노예들을 부릴 수 있게 되면서 굶지 않게 되었다. 얼추 신라와 가야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리스 역사에서 웃기는 두 번째(첫 번째는 알렉산더왕을 그리스 전성기로 보는 것이다.)는 스파르타를 강병국가, 전쟁국가라 여기는 것이다. 실상 역사에서 스파르타가 승리한 전쟁은 거의 없다. 특히 결정적인 전쟁에서는 한 번도 솔선해 나선 적이 없었으며, 승리의 주역이었던 적도 없다. 대부분의 경우 이 핑계 저 핑계 참전을 미루다가 아테네가 이겨 논 전쟁에 숟가락 얹기를 반복했을 뿐이다. 이런 자들이 나름 잘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사건건 험담하고 시비걸며 국지적 도발과 떼쓰기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되도록은 못해도 안 되게는 할 수 있다.’로 지분을 주장하는 것이 특기였던 것이다.

이런 정도가 18세기 서양 역사학자들이 치켜세웠던 그리스다. 그 이후 수많은 학자들이 이 190년을 현미경으로 샅샅이 살피며 미주알고주알 추측과 찬탄을 더하니, 고대 그리스가 수천 년의 유구함을 가진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는 착각이 생겨났다. 하긴 현미경으로 보면 손톱도 대륙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 역사와 비교하자면 가장 짧은 왕조였던 발해가 228년, 그 다음인 통일신라는 260년 동안을 지속했다. 고려와 조선을 합치면 얼추 천 년이니 이와 비교할 때 그리스가 유구한 역사라면 한민족의 역사는 영겁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고전기 그리스란 한나절에 불과한 시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 문명이 무엇이겠는가? 박물관에 수많은 조각과 향연 향락이 전시되어 있다하더라도, 엄밀하게 그것은 한 때의 잔재에 불과한 것이며, 그런 정도의 명멸은 세계사 곳곳에 널려있다. 오히려 인류사에 혜성처럼 빛나는 순간은 그리스인들이 미개인이라 멸시했던 마케도니아의 청년 알렉산더가 궁벽한 반도에서 희미하게 명멸하던 해적의 문화를 세계로 퍼날랐던 대원정기 12년일 것인데, 그것이야 말로 경계 너머 양쪽의 이방이 교류하고 성취하도록 만든 문명의 대오각성인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그리스가 허접해져야 인문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시중의 인문학자들이 그리스를 인문의 고향이라 하고, 철학자들은 신과 철학의 고향이라 하지만 이것처럼 멍청한 주장도 없다는 것이다. 더 많은 인문이 경계가 다른 곳에서 태어났고, 또 더 많은 신과 철학이 다른 고향에서 났잖은가? 지난 200년 동안 우리 문사철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그리스 근본주의를 진작 버리지 못하고 무분별한 인용만 해왔다는 점이다. 그래서야 어찌 스스로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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