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보면 엄청 의아한 점이 있다. 생산이 없는데, 흥청거리고 살았다는 것, 그 척박한 땅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부귀영화를 누렸다는 것이다. 이런 의아함은 기원전 1300년 전후, 에게해에서 침몰한 울루부룬 난파선을 알면 조금 풀릴 듯싶다.

울루부룬 난파선은 침몰한 고대 무역선이다. 우리로 치면 신안 보물선에 해당하는데, 크기가 10m 정도고 무게는 30t이 넘었다. 돛을 달아 항해했으나 갤리선은 아니다. 온갖 명품과 비싼 화물을 싣고 아나톨리아(터키)의 남쪽 연안 울루부룬에서 침몰했다. 바다 스펀지를 따던 잠수 어부가 발견했고, 긴 시간에 걸쳐 보물을 건져 올렸다. 주로 다루기 쉬운 형태로 제작된 소가죽형 구리 잉곳이 약 10t, 주석 잉곳 1t, 와인 25ℓ가 담긴 가나안 항아리가 150개(3750ℓ)가 나왔다. 역시 교역에는 배가 최고다.

에게해 무역이 광범위했음을 보여주는 시리아, 미케네, 키프로스 및 가나안 도자기도 나왔다. 청동 도구와 무기, 저울추, 금은보석, 이집트 상형 문자가 새겨진 금반지 등도 나왔다. 가장 멋진 것은 이집트 최고의 미녀 권력자였던 네페르티티의 황금 풍뎅이인데, 이것은 지금보아도 정말 멋진 디자인이다. 네페르티티가 지녔다는 소문에 에게해 전역에서 주문했던 듯싶다. 이집트 상품과 문화가 주변 변방에 얼마나 넓고 깊게 침투했었는지를 보여주는 선명한 증거다. 요약하자면, 후기 청동기 시대의 이 난파선에는 엄청난 부(富)가 실려 있었다.

이 배가 무엇을 의미할까? 당시 대표적인 그리스 부족 집단인 스파르타가 대략 인구 5000명(가구 수로는 1000호) 정도였다. 그렇다면 제우스 혹은 포세이돈이 두목인 해적이 무역선 한 척을 약탈하면 모든 가구마다 청동 11kg, 가나안산 최고급 와인 5병씩 나눌 수 있다는 의미다. 두목이 많이 갖든 말든, 평균이 그렇다.

청동 1kg이면 멋진 칼 한 자루를 만든다. 대표적인 청동검이 로마 시대의 단검 글라디우스인데, 60cm 길이에 무게가 1kg 정도다. (철기시대임에도 로마의 장군들은 꼭 청동제 글라디우스를 들고 다녔다. 오늘날의 샤넬이다.) 고대에선 이런 청동검 한 자루가 있으면 남들이 장군이라고 불렀다.(샤넬을 들면 계주가 된다.) 이런 능력자라야 대장으로 삼을 만한 것이다.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가 장군인 것도, 남친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복수하는 부분에 나오듯이 청동 투구와 방패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청동 1kg은 족히 1년 연봉에 해당했을 것이다. 한 번 노략으로 모든 가구가 무려 11kg, 아껴 쓰면 10년, 마구 써도 2년은 굶지 않을 수 있을 재산을 얻는다. 여기에 로마네 꽁띠 5병은 보너스였다.

해적질이란 이런 것이다. 현대 경제로 치자면 2년 어치 국민소득에 해당하는 부를 한 번의 성공으로 얻는 것이다. 계절마다 성공하면, 도시에 사는 모든 이들이 흥청거릴 것이다. 매일이 향연이고, 향락이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자들은 다음 해적질을 위해 운동하고 또 운동할 것이다. 평판을 신경 쓰며, 정원을 대리석 조각으로 꾸미고, 사우나도 만들 것이다. 모두가 부자라서 차별화가 아쉽다면, 향신료 역할을 하는 철학이나 사유, 음유시 혹은 영웅담을 조금 섞으면 통했을 것이다.

그러니 유럽이 유구한 역사를 통해 이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다. 십자군, 백년 전쟁, 대항해 등등. 유럽 해양 문명의 깊은 곳에 이런 제우스적인 기억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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