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설치 부문 동력설비에 편중
낮아진 문턱 넘어 불량 업체 난입...기준 적격심사 조정
ESCO 시장 특성화 금융제도 개발 시급
국내 기업 해외 진출의 교두보 역할 할 것

에너지절약전문기업(ESCO)제도는 에너지절약을 위해 기존 저효율 에너지사용시설을 고효율 시설로 바꾸는 사업으로, 도입 이후 약 1조3000여 억원의 높은 에너지 절감 효과를 내는 등 우리나라 에너지효율 정책의 효자 노릇을 해왔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ESCO사업자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하다. 팩토링 거절, 불량업체 유입 등의 문제가 시장을 침체의 늪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이에 올해 새로 ESCO협회를 이끌게 된 이임식 8대 ESCO협회장을 만나 시장침체를 타개할 시장 활성화 방안과 사업계획을 들어봤다.

▶지난 2월 ESCO협회 8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취임 소감을 부탁한다.

협회장직을 맡게 된 것을 개인적으로 큰 영광으로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큰 책임을 지게 된 것 같아 무거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중책을 맡겨 주신 만큼 협회가 ESCO를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하고 회원사의 권익 신장과 업계 발전을 위한 구심점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에너지효율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ESCO시장은 여전히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어떻게 보고 있나.

세계 ESCO시장은 36조6000억원(2017년)에서 39조5500억원(2018년)으로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장기계약 기반의 효율 프로젝트를 제공하는 ESCO사업을 각 국가가 에너지효율 개선 투자의 핵심조력자로 여기고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ESCO산업은 점점 하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6~7년 전에는 3000억원 규모를 유지했지만 2015년부터 점점 떨어져 지난해에는 500억원 규모, 에너지이용합리화자금은 150억원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특정설비 편중, 불평등 행정절차, 팩토링 거절 등의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융자금을 계속 늘려도 업계는 침체를 벗어나기 힘들다.

▶특정설비에 자금이 편중되고 있다는 게 무슨 얘기인가.

적절하게 다양한 분야의 에너지효율 향상에 사용돼야 할 자금이 유독 한 분야에 집중해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사출기’에 너무 많은 비용이 편중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설비별 지원 현황을 보면 에너지이용합리화자금 2823억원 가운데 동력설비 부문에 약 48%가 집중적으로 할당됐다. 금액으로 치면 1350억원이다. 이 가운데는 사출기가 가장 많다. ESCO는 지난해에 겨우 150억원 정도 했다. 이처럼 산업 곳곳에서 필요한 에너지절약이 한 설치사업에만 투자되는 모습이 안타깝다. 또 사출기는 절약시설 설치사업으로 시행되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 향상에 대한 성과보증이 되지 않는다.

▶불평등 행정절차는 또 무엇인가. 에너지이용합리화자금은 ESCO 투자사업과 절약시설 설치사업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두 개의 사업 추진 과정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인가.

공평하지 않다. ESCO 투자사업에 비해 절약시설 설치사업이 준비하는 서류가 너무 부실하다. 예를 들어 공기압축기 설치를 절약시설 사업으로 진행하면 공급계약서 서류 1장이면 되는데 ESCO사업으로 진행하면 계약서뿐 아니라 에너지절감량 진단서, 성과보증서, 상환서류 등 다량의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절차가 편리하니 신청자들도 당연히 그쪽으로 몰린다. 문제는 절약시설 사업은 ESCO처럼 성과보증을 하지 못한다. 에너지효율 향상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시행하는 제도인데 효율 향상이 뛰어나고 성과까지 보증해주는 ESCO사업이 행정과정에서 페널티를 받으면 되겠는가. 제도의 본 목적을 위해서라도 절약시설 사업에도 성과보증서류를 포함해야 한다

▶팩토링은 또 어떤 문제가 있나.

ESCO기업은 초기투자비를 직접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사업에 참여할수록 부채율이 늘어나는 문제를 갖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ESCO기업이 보유한 매출채권을 금융기관에 판매하는데 이를 팩토링이라고 한다. 정부는 2016년 성과확정계약 제도를 신설하고 이에 대한 팩토링 재개를 결정했다. 따라서 성과확정계약 제도로 진행한 사업은 팩토링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제도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다. 성과확정계약 대상 사업임에도 팩토링을 이용할 수 없게 공공기관들이 팩토링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이 앞장서 팩토링을 거부하니 민간에서는 오죽하겠나. 사업자들은 팩토링을 안 해주니 부채비율은 쌓이고, 떨어진 신용도로 팩토링은 또 안 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이 때문에 기술력이 좋은 ESCO 중소기업이라도 이미 진행된 사업으로 인해 부채가 있어 에너지공단에서 추천서를 받더라도 대출을 받기 어렵다. 결국 자금조달 능력이 뛰어난 대기업 및 렌털사업자들만 참여하게 된다. ESCO사업 활성화를 위해 우선 공공기관에서 팩토링 제도를 추진하고 이 흐름이 민간분야로까지 이어지게 해야 한다.

▶협회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먼저 팩토링 문제를 해결하고 ESCO사업에 특성화된 금융 제도 신설을 건의하고자 실태조사에 나섰다. 근 5년간 시도됐던 팩토링 현안을 조사하고 있으며 회원사들과 금융사들의 자료를 받는 중이다. 성공했으면 왜 성공했는지 실패했으면 왜 진행이 안 되고 있는지를 파악해 팩토링 제도를 정착시키도록 힘쓸 예정이다. 대기업은 자금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기술력 하나로 추진해야 하는데 공공기관에서 팩토링을 해주지 않으면 ESCO 중소기업은 사업 침체를 벗어날 수 없다. 이 문제를 꼭 해결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또한 해외 ESCO산업 교류 활성화에도 힘쓰겠다. 단순히 다른 국가 협회와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는 수준을 넘어 우리나라 ESCO기업들이 실제로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교두보 역할을 하겠다.

2012년 ESCO시장에 해외진출 바람이 불었을 때 인도 에너지국장이 한국ESCO 기업들을 환영한다고 하면서도 인도문화 적응을 위해 2년 정도는 현지에서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2012~2013년에 야심차게 해외 진출에 도전했지만 지역 문화 특성 파악 및 적응 미흡으로 실패했다. 이때 만들어 놓은 해외진출자금 300억원은 1원도 못 썼다. 환헤지 책임을 ESCO사업자들에 지웠기 때문에 오랜 기간에 걸쳐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사업자 입장에서는 환율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당시 무역보험공사나 수출입은행과 논의했지만 그들은 G2G만 보증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해외 지자체를 주요 타깃으로 잡은 ESCO사업자들은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이번에는 실패가 없도록 다양한 루트로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과 복지향상을 위해 제공하는 공적개발원조(ODA)를 ESCO에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올해 안에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과 논의해 추진할 예정이다.

▶기업 역량 강화를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인정한다. 시장 침체의 원인 중 부실 ESCO기업에 대한 경험도 있었을 것이다. 이 같은 문제점은 시장업계 전체 신뢰도 하향으로 이어졌고 은행의 팩토링 거절 등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협회는 회원사 지원강화를 위해 올해 더욱 노력할 예정이다. 교육서비스를 확대하고 공동사업을 발굴할 예정이다. M&V분야 국제자격증인 CMVP 취득도 독려해 앞으로 도입될 정부 에너지효율 시장을 선도하게끔 역량을 키우겠다.

또한 2014년 ESCO사업자 등록기준 하향으로 인해 기술력이 없는 부실한 업체들이 유입됐는데 시간이 지나도 발전하지 못한 기업들은 시장 신뢰도 향상 차원에서 퇴출시킬 수 있도록 등록기준 적격심사를 다시 한 번 조정할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와 에너지 가격의 불확실성 증가 등 연일 우리 ESCO들에 어려운 사업환경이 이어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업계가 협회를 구심점으로 합심해 ESCO를 널리 보급하고 산업의 제도약과 활성화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에너지효율 혁신전략에 따라 M&V 국제자격증을 ESCO등록기준에 포함시키고, 성과검증 전문인력 보유업체는 공공입찰 참여 시 우대하는 방안이 포함되는 등 M&V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예고됐다.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해서 쌓아 온 신뢰와 기술력이 헛되지 않도록 업계가 열린 소통과 대화를 통한 화합으로 함께 뭉쳐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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