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0km에 9개국을 관통하는 다뉴브강을 양안에 둔 유럽에서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그들이 자랑하는 “유럽의 허파”에 해당하지만, 국토의 95%가 평원과 구릉지대여서 역사적으로 전쟁에 취약했던 지정학적 특성을 극복하고, 그 위에 펼쳐진 목가적 풍경은 헝가리가 왜 관광 대국인지를 잘 보여 준다.

나와 자부심 강한 마자르인과의 첫 만남은 1990년 4월로, 오랜 민주화 운동으로 1989년 헝가리공화국이 출범하였고 그해 2월 우리나라 대사관이 설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30대 초반에 한국전력공사 사장 수행비서로 평생의 스승이신 안병화 사장님을 모시고 유럽을 방문하던 길이었다.

아직 공산주의 시절의 유산이 남아 있는 부다페스트는 민주화 이후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이 매우 강하였다. 15세기에는 중부유럽 제일의 강국으로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웠던 자부심과 비록 합스부르크가 지배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오스트리아에 뒤지지 않던 삶이 공산 치하에서 크게 뒤처졌다는 것을 알고 분노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88년 올림픽 이후의 한국에 대한 기대가 높아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았는데, 지도층을 만날 때마다 몽고반점 등 한국인과의 유사점을 말하였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제2의 도시 스좀바텔리 호텔의 호청 이불과 둥근 베개, 병풍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광목으로 된 수건과 빨랫비누 수준의 거친 세면 비누가 어려운 경제 상황을 대변하였지만, 싫지는 않았다. 덴마크행 비행기 손님에게 나눠 준 봉지를 뜯고 곱게 빻은 고춧가루(파프리카 가루)임에 놀랐고, 우리를 우대한 것인지는 몰라도, 약술인 우니쿰과 우리와 비슷한 김치에도 동질감을 느꼈다.

30여 년 시차로 작년 9월 에너지 업계 40년 졸업기념으로 아내와 동유럽 5개국 여행을 하였다. 유람선에서 조명을 끄고 와인을 기울이며, 다뉴브와 부다페스트 야경에 취해 너나없이 셔터를 눌러대며 즐거운 여정에 취하였다.

다음 장면은 우리를 놀라게 한 5월 29일의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사고이다.

크루즈 선의 무리한 추돌로 35명이 사고를 당해, 7명 구조 이후 안타까운 사연을 간직한 희생자를 뒤로하고 사고수습이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을 지난달 말 구조대의 귀국기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불과 6개월 전 유사한 경험을 한 나로서는 운명의 여신의 엇갈림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감회가 남달랐다.

여기서 우리의 대응을 짚어 보자. 일련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사건 초기에는 요란스럽게 당국자를 보내고 마치 사고 현장이 국내인 것처럼, 헝가리 당국의 입장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과 언론의 보도에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반면, 국제하천의 특성상 늘어나는 물동량과 관리라는 숙제를 남겼지만, 현장을 통제하는 헝가리 당국과 국민의 차분한 대응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내가 경험한 헝가리와 규정과 안전중시에 입각한 원칙적 대응이, 허둥대며 들끓는 여론이 지배하는 우리네 정서와 어쩐지 대비되었다.

여기서 30년 전 얘기를 떠 올린다. 1천만에 못 미치는 헝가리인과 자국 출신 노벨상 수상자가 인구대비 최대라는 자랑과 기초과학과 의학의 발달, 1884년 개관한 오페라하우스를 비롯해 소도시에도 교향악단이 있다고 자랑하던 문화강국. 수많은 예술인과 우리가 잘 아는 인텔의 앤드루 그로버 회장과 조지 소로스 회장도 헝가리인이라는 자부심이 마자르인의 피에 흐르고 있었다.

서구 문명의 본류인 로마 문명을 통해 오랜 시간 배양된 문화력의 차이는 결코 가벼이 볼 게 아니다. 이번 사고를 통해 배울 것은 그들의 생활 수준이 우리보다 못하다는 우월감, 여행 안내서에 나와 있는 각종 주의사항이나 IMF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라는 부정적 인식을 넘어 경제력과 문화 수준이 꼭 비례하지는 않으며, 역사와 경험에서 축적된 문화력을 존중하고 사유의 시선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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