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마지막 전쟁포로가 되어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던 안드라스 토마는 기구한 운명의 헝가리 군인이었다. 모스크바 포로 수용소에서 700㎞ 떨어진 코텔리치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던 이유는 러시아말을 모르는 그가 이따금씩 못 알아들을 헝가리말로 중얼거리는 모습을 횡설수설하는 것으로 오인해 정신분열증 진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55년의 모진 세월이 흐른 2000년 8월, 오명을 벗고 조국으로 귀환했지만 그의 몸과 마음은 오랜 세월 학대와 신경안정제 투약으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1계급 특진도 하고 고향으로 귀환해 여동생의 보살핌도 받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한 많은 79세의 생을 마감했다. 그가 자유의 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한 말은 “거울을 갖다 주시오”였다.

그는 거울 속의 자신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 폐인처럼 변해버린 노인의 모습은 그를 더욱 절망 속에 빠뜨렸을 것이다. 오랜 시간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던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실제로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거울을 찾았다는 것은 그래도 완전히 망가진 상태는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인생 속에서 우리는 주어진 환경과 역할에 순응하고 익숙해져 어느새 자신의 얼굴을 잊어버리고 사는지도 모른다. 직장에서는 직급으로 불리우고 가정에서는 부모로, 며느리와 사위로 역할을 하는 동안 본래 꿈꾸어왔던 '나'를 망각해 간다. 어느날 문득 정신이 들어 거울을 보면 거울 속의 내가 타인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어릴 적 기억을 소환해주는 동창들과의 만남을 그리워하나 보다.

그간 주로 스피치와 리더십 강의를 해오던 나는 최근 글쓰기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외부 요청으로 시작된 일이지만 처음에는 보도자료, 인터뷰 기사부터 에세이, 칼럼, 기획안, 방송 및 MC 큐시트까지 글쓰기의 스킬에 대한 커리큘럼을 짜는 데에 열중하다가 글쓰기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글쓰기는 자신을 거울 앞에 세우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게 된다. 지키고 싶었던 나, 되고 싶었던 나를 발견하며 내 얼굴과 내 이름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생전의 우리 어머니는 병원과 약국 가는 날이 즐겁다고 하셨다. 대기석에 있을 때 누구의 할머니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이 기분 좋아 처음엔 못들은 체 하다가 늦게 대답한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소녀같은 고백 속에는 평생을 엄한 종가집의 맏며느리로, 무심의 남편의 아내로, 끝없는 뒷바라지가 필요한 자식의 어머니로 온몸의 진액이 마르도록 희생해온 한국 어머니의 고달픈 삶이 배어 있었다. 친구들, 친목계조차 다 끊고 손자 양육을 위해 오로지 할머니로만 살아오셨다. 그래서 더 이상 본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간이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 때, 무척 허무하고 서운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특히 여성은 거울을 자주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 거울은 친구일 수도 있고 독서나 글쓰기일 수도 있다. 최상의 거울은 친구의 눈이라는 게일족 속담이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 사람은 세월과 풍파 속에서 더욱 견고해진다.

동화 백설공주에서 아름다움에 집착한 마녀 계모는 거울에게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묻는다. 그녀는 자신이 최고라고 답해주지 않는 정직한 거울을 향해 분노한다. 그녀의 비교의식은 백설공주를 독살하려는 음모로 이어진다. 주변사람의 정직한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 편협한 성격의 독재자나 권력에 심취된 사람들은 정직의 거울 앞에 서는 걸 힘들어 한다. 심지어 진실을 말하는 거울을 깨버린다. 그들은 아첨꾼들이 분칠한 왜곡된 거울을 좋아할 뿐이다.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또한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 속에 빠져버린 나르시스의 자기도취처럼 나르시시즘은 자신을 정확히 보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생명을 빼앗을 만큼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명경지수(明鏡止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춘추 시대, 노(魯)나라에 왕태(王砨)라는 학덕이 높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쪽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에 불만을 품는 제자들에게 공자는 이렇게 타일렀다. "그것은 그분의 마음이 조용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거울 대신 비쳐볼 수 있는 물은 흐르는 물이 아니라 가만히 정지(靜止)해 있는 조용한 물이니라." 

우리에게는 서로에게 명경지수가 되어주는 참 벗이 필요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거울을 인간이 답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을 때 신의 답을 얻기 위한 절차, 즉 신탁을 위해서나 미래를 점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굳이 점을 치지 않아도 오늘 내가 심은 하루는 나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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