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자동차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 미국 상무부의 최종적인 결론이라고 한다. 이제 미국 정부는 수입 자동차나 부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수입을 제한할 수도 있다. 근거가 되는 무역확장법 232조라는 게 원래 수입 제품이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때 수입을 제한하거나 높은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1962년 제정됐지만 사실은 이후 50여 년 동안 실제 적용된 사례가 단 2건에 불과할 정도로 있으나 마나한 법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활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90일 안에 어떤 조치를 취할지 결정하게 된다. 관세부과가 유력한데 최고 25%까지 가능하다. 현재로선 관세가 어떤 범위의 제품에 대해 얼마의 세율로 부과될지 불투명하다. 2017년 기준으로 미국의 최대 자동차 수입 국가는 469억 달러의 멕시코다. 이어서 캐나다와 일본, 독일의 순서다. 한국은 157억 달러로 독일에 이어 다섯 번째다. 미국은 이들 국가 중에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선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을 지난해 체결했고, 우리나라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을 타결한 상태다. 남은 건 유럽연합과 일본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아직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어떤 얘기도 들은 게 없다. 자칫 우리나라에도 25% 일괄 관세가 적용되면 타격은 불가피하다.

그나저나 자동차 수입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니 이해하는 게 쉽지는 않다. 사실 미국에서도 찬반양론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더욱 그렇다. 야당인 민주당에서도 반대하는 얘기를 공식적으로 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미국에서 자동차는 정치문제이기 때문이다.

우선 표가 만만지 않다. 자동차 산업은 부품 제조에서부터 금융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전후방 연관 산업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종합산업이다. 미국의 자동차 제조·유통·판매업계에는 약 150만 명이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금융이나 보험 등 자동차 산업과 관련된 파급 고용 효과까지 감안하면 약 570만 명에 이른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 산업보호에 대해 집착하는 이유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는 미국 중북부의 쇠락한 공업 지대에 사는 백인 노동자들의 민심을 등에 업고 당선됐다. 미시간과 오하이오 같은 곳인데, 특히 미시간에서 공화당 대통령후보가 이긴 것은 1988년 이후 28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 귀중한 미시간 전체 노동자의 11.2%가 자동차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자동차가 미국 사람들에게 갖는 상징성도 있다. 미국은 원래 자동차 공화국이다. 워낙 땅이 넓어서 자동차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자동차는 미국인들에게 자유와 독립의 상징이기도 하다. 자동차를 이를테면 미국의 세속적 종교라고까지 부르는 사람도 있다. 높은 자부심에 비해 미국 자동차 회사들의 경쟁력은 그렇게 강하지 못하다. 한때 전 세계 자동차의 85%를 생산했던 미국이지만 그건 정말 옛날 얘기다. 지금은 미국 국내시장에서도 GM과 포드를 합친다고 해야 점유율이 겨우 30%를 약간 웃도는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산업 자체의 경쟁력과는 무관하게 자동차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앙에는 변화가 없다. 많은 표가 걸려있고 상징이기도 하고, 그러나 경쟁력이 떨어져 지키기는 어렵고, 그래서 미국의 통상정책은 자동차 문제에 관한한 보호주의로 수렴돼 왔다. 자동차 앞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없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이해 없이 미국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김상철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MBC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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