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이사
윤태환 루트에너지 대표이사

“정말 아직도 사람을 믿나?”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 깐부로 유명한 ‘오일남’이 주인공인 성기훈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성기훈은 여전히 사람에 대한 믿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 그 질문은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것이기도 하다. 과연 여러분은 사람을 믿는가?

지난 2주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26번째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렸다. 매년 전세계 리더들이 모이는 만큼 실질적인 대안이 나오길 바랐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기존에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던 선진국들이 배출량은 적지만 기후 재난으로 더 큰 피해를 입은 국가들에 대한 보상 요구를 거절하였다. 그 뿐 아니라, 인도 등 개발도상국들은 석탄발전을 퇴출하지 않고, 유지하며 천천히 감축을 하겠다고 한다. 경제성장 때문이다.

기후 위기에 취약한 약소국가들이 초록 옷을 입은 게임 속 플레이어였다면,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선진국들은 붉은 옷의 통솔자 이자, 게임 자체를 만든 오일남들이었다. 그 누구도 약소국들에게 이 게임을 강요한적이 없다. 다만 선진국들이 이 게임을 만들었고, 그 누구도 쉽게 살아서 나가기 힘들 것 같다.

게임의 목표는 단 한가지이다. 제한된 시간 내에 탄소배출량을 ‘0’으로 줄이는 것. 만약 그 목표를 달성하면 모두가 살아서 나갈 수 있고, 미달되면 한 명도 살아나갈 수 없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게임에선 어떻게 승리를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정부나 대기업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난 12년간 단 한번도 지켜지지 않았고,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결국 게임의 룰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나도 성기훈처럼 아직 사람을 믿는다. 하지만 다른 점은 어떤 개인이나 단체를 믿기보다 그 사람이 가진 본성. 즉, 사람은 모두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는다.

두가지 예를 들면 만약 동일한 품질을 가진 전기를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에서 각각 생산하고, 구매 가격이 거의 동일해서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심지어 재생에너지로부터 생산된 전력이 더 저렴하다면 어떻겠는가. 실제로 이미 전세계 200개국 중 120개국에선 재생에너지 전력이 석탄에서 생산된 전력보다 저렴하다. 이런 사회는 누구나 재생에너지를 구매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내가 구매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탄소발자국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난다면 어떻겠는가? 맛은 거의 비슷한 라면인데, 원재로 수취부터 제조, 유통, 취사, 폐기까지 전 과정의 탄소배출량을 측정하여 그 양이 적을수록 더 저렴 해진다면 어떨까. 아마도 많은 국민들이 탄소제로 라면을 먹을 것 같다.

지금까지 대부분 탄소중립은 정부나 대기업 등이 주도하여 탑다운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탄소중립은 정부에서 적절한 가격정책, 조세정책, 산업정책 등이 도입되었을 때 국민들에 의해 저절로 바뀌게 될 것이다. 소비 트렌드가 바뀌고, 시장 수요가 바뀌면 기업도 도태되지 않기 위해 능동적인 대응을 하게 될 것이다.

실제 최근 유럽에서 탄소국경세라는 새로운 무역규제가 생겨났다. 탄소 배출량이 높은 제품과 서비스를 유럽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적절한 산업정책으로 제품과 서비스 생산의 탄소배출량을 줄여왔던 유럽은 지난 10여년간 철저한 준비를 해왔지만, 우리 기업들은 같은 시간이 있었음에도 거의 준비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기업들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명확한 산업정책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제시하지 못한 정부의 잘못도 크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앞으로 정부에선 탄소중립 시대에 ‘탄소인지예산제’를 도입하여 매년 국가 예산을 책정할 때, 탄소배출량이 감축될 수 있는 곳에 더 많은 세금이 쓰일 수 있도록 하고, 조금은 늦었지만 기업들도 탄소국경세와 같은 외부 충격에 보다 능동적인 대응을 해나 갈 것이다.

추가로 가능하다면 우리 정부에서 전세계 최초로 ‘탄소인지소비제’ 혹은 ‘탄소인지가격제’를 시행했으면 좋겠다. 가능한 모든 제품과 서비스의 탄소배출량을 Scope 3인 원료의 채취부터 제품의 폐기까지 배출량을 공개하고, 그에 따라 가격 신호가 소비 패턴을 바꿀 수 있도록 실질적인 가격정책 대안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 하지만 만약 그런 변화가 가능하다면 탄소중립은 우리 기대보다 5년, 아니 10년은 더 빠르게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믿기보다 사람의 본성을 믿자. 내 가족과 나 자신의 건강을 위해 더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자. 앞으로 탄소중립은 결국 그런 믿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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