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취지는 ‘탄소 누출 방지’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기 등 5개 품목 포함
실질적 실현까지 난관 많아
에너지분야선 재생E 전환이 가장 확실한 탄소저감방법

유럽연합 프란스 티머만스 집행위원회 수석부회장(왼쪽)과 파올로 젠틸로니 경제 담당 집행위원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제공: 연합뉴스
유럽연합 프란스 티머만스 집행위원회 수석부회장(왼쪽)과 파올로 젠틸로니 경제 담당 집행위원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제공: 연합뉴스

[전기신문 정재원 기자]

탄소국경조정제도로 탄소 누출 방지

지난달 14일 EU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기 위한 기후 대응 법안 패키지인 ‘핏 포 패키지(Fit for 55 Package)’를 발표했다.

급변하는 기후를 막기 위한 유럽의 선도적 조치로 에너지와 제조업, 운송 등에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법안이 담겼다. 그중 가장 관심을 받는 것은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이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EU로 수입되는 제품의 탄소 함유량에 EU 배출권거래제(ETS)와 연계된 탄소 가격을 부과하는 것으로 탄소국경세라고도 불린다. 사실상 ‘추가 관세’ 역할로 볼 수 있으며 2023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 적용품목에 대해 수입업자가 연간 수입량에 따른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구매는 해당 품목 탄소배출량에 비례해야 하며 CBAM 대상 수입품이 원산지 국가에서 배출권 가격을 지불한 경우 감면받을 수 있다. 이번 법안에는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기 5개 품목이 그 대상이고 2026년부터 본격 적용된다.

제도의 취지는 결국 탄소 누출(Carbon Leakage) 방지다. 기후위기가 한 국가와 관련된 것이 아닌 전 세계 동참이 필요한 만큼, 탄소 다배출기업이 외국에서 그대로 탄소를 배출한다면 규제가 헛수고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축 규제가 강한 국가에서 규제가 덜한 국가로 제조시설을 옮기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와 함께 EU 외 국가에서 생산돼 EU로 수입되는 제품에도 EU 내 상품과 동등한 수준의 배출 규제 비용을 부담시켜 규제 간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EU는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는 매년 100억유로를 거둬들일 계획을 하고 있다.

또한 추가 수입의 상당액은 7500억유로에 이르는 코로나19 경제회복기금 부채 상환에 사용할 계획이다.

◆EU, 내부반발과・국가 간 입장 차 뚫고 도입 가능할까

하지만 실질적 실현까지는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EU 내 산업계의 반발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에 따르면 전력, 철강 등 CBAM 적용대상에 포함된 제조업계를 중심으로 CBAM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고 있다. 또 유럽 내 생산제품을 탄소세 비도입국에 수출할 때 적용하는 무역정책인 수출환급제(export rebate scheme) 도입 요구도 나오고 있다.

무상 할당제 폐지에 따른 EU 국가 간 입장 차도 있다. EU는 과거 철강, 시멘트 등 온실가스 다배출 관련 기업에 배출권 일부를 무상할당했다. 하지만 “탄소배출권을 무상으로 할당하는 관행이 지속돼 기업의 친환경 전환이 늦어졌다”는 비판이 제기돼 결국 유예기간인 2025년 이후 매년 무상 할당량을 10%씩 줄여 2035년에는 무상할당을 폐지하기로 한 것이다.

철강, 시멘트 등 관련 기업은 과거와 달리 배출권을 구매해야 하는 등 비용상승을 겪게 됐다. 따라서 시멘트 그룹 라파즈가 있는 프랑스, 철강 그룹 아르셀로미탈이 있는 룩셈부르크 등은 공장을 외국으로 옮길 경우 국내 고용 창출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에 관련 국가들은 도입을 망설일 가능성도 있다.

◆국내 탄소배출권 가격 EU의 1/3도 안 돼

탄소중립에 대한 EU의 의지가 강한 만큼 규제는 점점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탄소 배출 자체를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주변 선진국보다 감축 목표 자체는 낮은 편이지만 곧 발표될 탄소중립시나리오와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통해 전체적인 상향이 기대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ETS)를 통해 시장메커니즘을 활성화해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전기차 기업으로 알려진 테슬라의 경우 탄소배출권을 통해 지난해에만 16억 달러를 벌어들이기도 했다. 문제는 우리나라 배출권 가격이 EU와 비교했을 때 훨씬 싸다는 점이다. 만약 기업이 EU의 배출권 기준보다 덜한 돈을 냈다면 수출 시 추가로 금액을 내야 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7일을 기준으로 탄소배출권 주 거래 종목인 KAU21의 종가는 20500원이었다. EU의 경우 약 52유로(환산 7만원대)로 형성되기 때문에 차액은 탄소국경세가 된다.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EU 탄소국경조정제도 대상품목 EU 수출 현황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EU 탄소국경조정제도 대상품목 EU 수출 현황

◆기업들 어떤 영향 받나

당장 우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기업은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있는 철강업계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EU 탄소국경조정제도 주요 내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철강 산업에 CBAM 인증서 비용만 연간 최대 3390억원(약 2억5000만유로)에 달하는 청구서가 날아들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피하고자 EU를 따라 제도를 바꾸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규제 수준을 EU에 맞춘다면 제품 가격이 상승해 EU 외 다른 국가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온실가스 감축’이 없다면 기업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다만 국내 기업에 유리한 점도 분명 존재한다.

권동혁 에코앤파트너스이도씨 본부장은 “EU가 우선 유예기간 5년 동안 기업의 관련 데이터를 다 받기로 했는데 이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 기업을 포함한 몇 곳에 불과하다”며 “의외로 국내 탄소배출 관련 데이터는 촘촘하게 잘 돼 있는 편이기 때문에 타국 기업보다 대비할 시간을 몇 년 번 것으로 볼 수있다”고 말했다.

존 케리 미국 기후 특사. 제공: 연합뉴스
존 케리 미국 기후 특사. 제공: 연합뉴스

◆미국 참여로 국제공조 시작되면 현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제도의 승패를 가를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미국은 제도 도입을 적극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탄소국경세를 이야기한 바 있고 EU의 CBAM 도입을 발표 이후, 미국 민주당은 2024년 1월부터 화석연료, 알루미늄, 철강, 시멘트 등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방침이 담긴 법안인 ‘FAIR Transition and Competition Act’를 공개하기도 했다.

존 케리 미국 기후 특사도 나섰다. 존 케리 특사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EU의 탄소국경세와 관련해 “미국도 EU와 긴밀히 대화했다”며 “중국 등 다른 나라와도 논의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진 에코앤파트너스이도씨 팀장은 “탄소국경세가 미국 스타일이 아닌 제도다 보니까 트럼프 대통령 시절까지만 해도 제도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하지만 미국에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도 필요하고 기후변화에 특히 관심이 많은 민주당이 상, 하원에서 다수이기 때문에 동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은 있지만 결국 미국이 참여한다면 세계적인 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탐라해상풍력발전소 전경(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제공: 연합뉴스
탐라해상풍력발전소 전경(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제공: 연합뉴스

◆근본적 해결 재생에너지 확대해야

결국 탄소국경세를 대비하기 위해선 근본적 결론인 온실가스 배출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택중 한국RE100협의체 의장은 “탄소 저감을 위한 여러 방안이 있으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에너지 분야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가장 확실한 탄소저감 방법의 하나”라며 “이를 통해 탄소저감 및 탄소국경조정세 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동혁 에코앤파트너스이도씨 본부장은 “최근 기후변화가 극단적으로 변하다 보니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인지했다”며 “기업들도 탄소배출 금액에 대해 항의하기보다는 대비를 구상해야 하고, 정부는 탄소 배출 자체를 줄이기 위해 재생에너지 공급과 전력시장 제도 개선 등을 준비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일각에서는 석유 구입 등으로 해외로 나가는 돈을 모두 국내 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자해 국내로 돈이 환원되게 만들어 이번 제도에 대응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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