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건설분야 임금 인위적으로 조정할수 있는 적정임금제 도입 논의

[전기신문 나지운 기자] 정부가 전기‧통신‧소방공사업을 포함한 범건설업계 인건비의 인위적 조성에 나섰다. 전기공사협회 등 주요 단체가 부작용을 우려했지만 관련 건의사항 등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도가 시행되면 취지와 다른 악영향만 일으킬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정부 일자리위원회와 관계부처는 지난 18일 ‘건설공사 적정임금제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건설공사 적정임금제란 발주처가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의 수준을 발주처가 아닌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제도다. 건설산업계의 ‘최저임금제’라고 할 수 있다.

제도는 지난 2012년도 19대 국회 시기부터 논의가 시작됐으나 시장경제제도에 정면으로 배치될뿐더러 제도가 실제 현장 여건과는 맞지 않아 취지와 달리 부작용만 양산될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이 때문에 실제 입법 발의 및 제도 시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 정부가 들어서고 지난 2017년 이후 20여건의 시범 사업 및 연구가 진행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결국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일자리위원회는 오는 2023년 1월부터 국가·지자체의 300억원 이상 공사를 대상으로 적정임금제를 우선 시행하겠다고 나섰다. 민간 공사는 추후 적용을 검토한다는 설명이다.

지급 대상은 직접노무비 지급 근로자다. 정부는 대상이 아니더라도 측량조사, 설치조건부 물품구매 관련 근로자에게도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러한 일방적인 정책 밀어붙이기에 전기공사업계는 물론 통신, 소방 및 건설업계도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다. 한국전기공사협회를 비롯해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한국소방시설협회‧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대한전문건설협회‧대한건설협회 등 범건설업계를 대표하는 6개 단체는 지난 18일 일제히 유감의 뜻을 밝혔다.

6개 협회는 제도 도입의 타당성과 예상되는 부작용을 고려했을 때 신중한 검토를 거듭 요구했지만, 결과적으로 정부가 건설노조의 의견을 중점적으로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또 시장경제에 정면으로 배치될 뿐 아니라 업계를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는 정책이 될 것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정부가 강조하는 일자리 창출에 대해서도 오히려 일자리를 더 줄이게 될 것이라며 부작용을 염려했다.

범건설업계는 건설근로자의 임금이 이미 타 산업을 크게 상회하는 상황인데도 적정임금제를 도입하게 되면 노사 간 이해충돌이 불보듯 뻔하게 될뿐더러 소모적인 사회적 갈등과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 예측했다.

제도의 명분 또한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다단계 생산구조로 노무비가 삭감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업계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근로자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시장 특성상 일방적인 임금삭감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이미 ‘임금직접지급제’ 등 임금삭감 방지 장치가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정부가 중요시하는 청년 일자리 확보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제도가 시행되면 모든 근로자에게 중간임금 이상의 급여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기업들은 생산성을 고려해 미숙련‧신규근로자의 고용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아직 숙련도가 낮은 젊은층의 기술 인력은 더욱 기피될 것이란 분석이다.

오히려 이 때문에 범건설업계가 우려하는 근로인력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업계는 입‧낙찰 제도의 근본적 개선이 없다면 노무비 상승분이 고스란히 기업에 전가돼 결과적으로 업체들의 피해만 누적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기업이 고용할 수 있는 인력이 줄어들어 근로 강도 상승은 물론 자칫 안전관리 투자의 축소마저 우려된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건설업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던 미국도 과도한 공사비 증가는 물론 일자리 감소까지 발생했다”며 “취지와 다른 부작용으로 결국 많은 주가 제도를 폐지하거나 적용 범위를 축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양질의 일자리를 다수 확보하는 게 정부의 의도라면 제도 시행 이전에 적정공사비 확보를 보장해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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