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광석價, 지난 5월 사상 최초 t당 200달러 돌파
글로벌 수요 급증·中 수급조절 등 상승원인 지목
한전 에스컬레이션 신청 건수 전년比 4~5배 급증

중국 칭다오항 기준(CFR) 철광석 현물 최근 1년 가격 변화(자료 제공=산업통상자원부)
중국 칭다오항 기준(CFR) 철광석 현물 최근 1년 가격 변화(자료 제공=산업통상자원부)

[전기신문 김광국 기자] 최근 철·구리 등 원자재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전력기자재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장기간 이어진 코로나19 여파로 부진을 겪어온 기업들은 원자재 급등이란 또 다른 악재를 만나 사실상 암흑기에 빠졌다. 업계 일각에서는 원자재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백신 접종으로 어렵게 마련된 업황 회복의 모멘텀이 상실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원자재 가격 천정부지…“철값 상승 유례없어”=최근 수개월간 철·구리 등 원자재의 가격은 거센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특히 그간 가격 등락이 적었던 철값마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 산업 전반에 파장이 일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중국 칭다오항 기준(CFR) 철광석 가격은 지난 5월 6일 기준 t당 201.88달러를 기록, 사상 최초로 t당 200달러를 돌파했다. 이후 237.57달러로 최고점을 찍은 뒤 다소 하락했으나 6월 8일 기준 209.5달러로 여전히 200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구리(전기동)값 또한 고공행진 중이다. 5월 6일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t당 1만25달러를 기록하며 2011년 2월 이후 10년 3개월여 만에 1만달러대를 넘어섰다. 최근 하강곡선을 그리고는 있지만 올해 4월 대비 1000달러 이상 높은 9000달러 후반대에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상태다.

이 같은 상승세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특히 업종 특성상 외함·프레임 등 철 자재 사용량이 많은 전력기자재업계는 철광석 가격 상승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실제로 철광석 가격은 1년 전인 지난해 6월 8일(105.67달러)과 비교해 무려 98.26% 상승했다. 역대 최저가격인 38.3달러(2015년 12월 11일) 대비로는 5년여 만에 447%나 오른 셈이다.

◆경제회복·공급량 부족 등 가격 급등 견인=유례 없는 원자재 가격 상승의 원인으로는 경제회복에 따른 원자재 수요 급증이 거론된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며 경제회복의 모멘텀이 마련됐고, 이에 따라 각종 기자재 및 인프라 구축 사업 등에서 사용량이 많은 철·구리 등이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회복이 가시화되며 수요 증가함에 따라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 것”이라며 “백신 접종 등으로 인해 코로나19 완화국면이 오면 공급량 부족으로 인한 가격상승 흐름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또 코로나19 발생 이후 줄어든 생산량과 중국의 수급 조절 전략도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 전력기자재 외함 전문기업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정상적인 산업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철광석 최대 생산처 중 하나인 남미·호주 등 국가의 생산량이 급감했다”며 “국내 주요 수급처인 중국의 경우 최근 들어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펴는 가운데 자국 수요를 우선 충족시키기 위해 물량을 싹쓸히 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물량 품귀현상에 수주 포기까지…중소제조기업만 ‘발 동동’=최근의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산업군은 중소제조기업이다. 자금 여력을 바탕으로 일찍이 원자재 비축분을 확보한 대기업군과 달리 중소제조기업군은 높아진 원자재 가격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배전반·개폐기 등 중전기기업계의 경우 철판 품귀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한 배전반 제조전문기업 대표는 “지난 5월 외함 업체들이 철값 상승을 반영해 20% 이상 공급단가를 인상했으나 크게 오른 가격에도 물건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주문을 넣고 통사정을 해야만 주문량의 40~50% 수준의 물건을 받을 수 있어 생산 일정에 차질이 막대하다”고 토로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을 공급 단가와 연동할 수 없다는 점도 애로사항이다. 한 개폐기 제조전문기업 임원은 “자재비 인상분만 고려하면 당장 제품 단가를 인상해도 이상할 것이 없으나 실상은 거래선 유지를 위해 납품기업이 손실을 홀로 감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지금 수주하면 손해’라는 판단에 수주를 포기하는 기업들도 속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해결책은 묘연한 상태다. 그나마 중소제조기업이 손실분을 보존받을 수 있는 길은 일부 공기업·기관에서만 적용되고 있는 ‘에스컬레이션’(escalation) 조항이 유일하다. 이 조항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것으로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의 조정을 위한 기준·산식 등 사항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한전의 경우 원자재의 등락·등락폭이 3%를 초과할 때 조항 적용 신청을 받고 있다.

문제는 최근의 원자재 가격 상승이 주춤세 없이 수개월째 이어지다보니 조항 적용 신청 건수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전 관계자는 “전년 동기 대비 신청 건수가 4~5배 늘어나다보니 이를 처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전력기자재는 장기간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잦은데 가격 조정 이후에도 원자재 값이 지속 상승하고 있어 대응에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업계의 애로를 이해하기에 최대한 빠른 시간 내 처리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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