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국제유가에 대한 예측이 엇갈리고 있다. 백신 접종과 미국의 비롯한 주요 국가들의 대규모 경기부양책, OPEC+ 감산과 투자 부진으로 인한 생산능력 감소로 유가가 ‘슈퍼 사이클’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가 하면 전기차 확산과 환경규제 강화로 석유 수요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산유국들이 점유율 경쟁으로 돌아설 것이라서 상당 기간 동안 유가 반등이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원유가 우리나라의 최대 수입품목이기 때문에 유가 급등은 큰 부담이지만 석유 관련 제품이 주요 수출품목이고 철강, 조선 등 우리의 주력 수출품 가격이 유가에 연동돼 움직이기 때문에 유가 급락도 큰 타격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가의 향방을 정확히 예측해 준비하는 것인데, 원유의 절대가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유질 간 가격차의 변동이다.

국제유가는 미국의 WTI 유가와 유럽에서 거래되는 브렌트 유가, 중동-아시아의 두바이 유가 등 크게 세 가지로 구별되지만 실제적으로는 수백 가지가 넘는 유종들이 다양한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24개국으로부터 80여종의 원유를 도입하고 있는데, 최근 유종들간의 가격차이 즉 ‘스프레드’에 큰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실제적인 원유 거래는 절대가격이 아니라 이 스프레드에 의해서 정해지고, 스프레드의 움직임에 따라 차익거래(arbitrage)가 발생해 석유 시장을 움직인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국제 석유 시장을 지배해온 WTI 유가의 상대가격 변동이다. WTI 가격지표인 미국산 원유는 비중이 가볍고 황 함량이 적은 고급 유종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더 비싼 가격으로 거래됐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셰일혁명 이후 미국의 원유생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WTI 가격이 크게 하락해 브렌트 가격보다 낮아졌으며 심지어 품질이 좋지 않은 고유황 중질유인 중동산보다도 훨씬 싸게 거래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셰일원유 생산이 정체되고 바이든 행정부가 시추에 대한 규제를 시행하면서 브렌트, 두바이유와의 스프레드가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2019년 평균 WTI가 브렌트보다 배럴당 $7.12 낮았으나, 2020년에는 스프레드가 $3.87로 좁아지더니 금년 들어서는 $3대 초반까지 줄어들었다. 두바이유와의 스프레드는 2019년 $6.49에서 2020년 $2.95로 좁아지고 2021년 들어서는 $1.5 수준으로 더 좁혀졌다. 2021년 평균유가에 대한 예측은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S&P Global Platts의 예상인 WTI $54, 브렌트 $56.3를 감안하면 브렌트와 WTI 스프레드는 $2대 초반으로 더 좁아진다.

이 스프레드가 좁아진다는 것은 미국산 원유의 상대가격이 비싸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입국들은 당연히 미국산 원유의 도입을 줄일 수밖에 없다. WTI가 브렌트와 두바이보다 배럴당 $7달러 정도 낮았던 2019년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산 원유 도입을 크게 늘렸다. 거리가 멀어 수송비가 더 많이 들지만 이를 충분히 상쇄할 만큼 가격 메리트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프레드가 좁아지면서 미국산 원유 도입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산 원유 도입이 2019년에는 하루 평균 37만8000배럴에 달했으나 2020년에는 28만6000배럴로 24% 감소했고, 2021에는 1~3월까지 28만1400배럴로 더 줄어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수요위축으로 2020년 우리나라의 원유 도입량이 2019년 대비 8.9% 감소했음을 감안하더라도 미국산 원유의 도입은 급격한 감소를 보인 것이다. 수요 감소로 2020년 중동산 원유의 도입도 2019년보다 10% 정도 줄었으나, 두바이 유가와 링크돼 상대가격이 낮아진 러시아의 극동 원유인 Sokol 원유와 ESPO 원유 도입은 오히려 늘어났다. 시베리아 원유는 수송 거리도 짧아 운송비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브렌트 가격 지표인 유럽산 원유 도입은 4배 이상 급증했고 브렌트 가격과 연계된 아프리카산 원유 도입도 23% 증가했다.

최근에는 중동 산유국들이 수출가격(Official Selling Price)을 높여 WTI와의 스프레드가 다소 확대됐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환경규제로 미국의 셰일원유의 생산이 줄고, 이란, 베네수엘라의 제재 완화로 중질원유의 공급이 늘게 되면 스프레드는 더 좁아지고, WTI가 두바이유가보다 더 높아질 수도 있다. 이러한 유종 간 가격 스프레드의 변동은 우리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정유설비는 중동산 원유에 최적화돼 있어 두바이유의 상대가격 하락은 정체 마진을 높일 수 있다. 반면 미국산 원유가 우리나라의 중동 원유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는데 가격 메리트가 상실되면 중동의존도는 다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에너지 독립으로 중동지역에 대한 직접 개입을 줄이면서 지정학적 리스크는 커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유종을 도입하는 다변화 전략이 더욱 절실하다.

이종헌 S&P Global Platts 수석특파원

국제경제학 박사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개발전문위원회 위원

<오일의 공포> <에너지 빅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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