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모르고 있었다. 월성원전 삼중수소 논란,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 등 굵직한 이슈에 묻혔다. 운영허가를 못 받아 다 건설된 신한울 1,2호기가 제대로 된 시운전도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을 미처 몰랐다. 운영허가를 받아야 연료를 채워 전기를 만드는 시운전을 할 수 있다. 발전할 수 있다면 시운전이나 상업가동이나 정산액수의 문제일 뿐 우리 국가에 기여하는 것은 큰 차이 없다. 시운전 전기라도 화력발전을 대체해 탄소배출을 억제하고, 전력 공급비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듣자니 신한울 1,2호기 운영허가가 지연되고 있는 이유는 후쿠시마 사고 후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설치한 PAR라는 수소제거장치 때문이란다. PAR는 국내 모든 원전에 설치됐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기준에 따라 총 9회에 걸쳐 성능 및 기기검증 시험을 수행해 인허가를 받은 후 설치됐고, 예방정비기간이 되면 지속적으로 기기성능을 확인받고 있다. 중대사고 발생 시를 대비한 것이므로 한 번도 가동되지 않은 것이 가장 좋다. 여기까지가 팩트다.

그런데 엉뚱한 일이 발생했다. 한수원이 ‘중대사고시 수소폭발에 대한 건물 안전성 평가 및 개선사항 도출’이라는 연구를 수행했는데, 이 과정의 한 부분으로 다양한 가혹 환경을 설정하고 실험을 한 결과 PAR의 수소제거량이 기기를 구매할 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제보된 것이 문제였다(실험이 잘못됐다는 다른 주장도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과제는 ‘가혹 조건하에서의 PAR 성능 시험’ 목적이 아니었다. 원안위가 이 문제를 꼬투리 삼아 운영허가를 지연시키고 있는 것이다. 과제를 수행한 것이 가렵지 않은데 긁어서 부스럼을 만든 꼴이 됐다.

그러니까 원안위의 허가 지연 사유는 자동차가 시속 60km로 달려서 콘크리트 벽에 부딪히는 충돌 안전성 테스트에서 ‘우수’를 받아야 자동차를 판매할 수 있다면 시속 100km로 달려서도 안전도가 같아야 한다는 것과 비슷하다. 안전도 측정 기준이 변동될 수 있는 것이면 규제당국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자동차는 영원히 판매될 수 없다.

한수원으로서는 원안위의 기준에 따라 PAR의 인허가를 받고 설치를 마쳤는데 기존 원전은 가동해도 되고, 신규원전인 신한울 1,2호기는 안된다는 원안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신한울 1,2호기는 논란이 된 PAR와 제조사도 다르다. 공기업인 한수원은 대처할 뾰족한 방법이 없고 주무부처인 산업부도 강 건너 불구경이다. 만일 발전소 소유가 민간이라면 당연히 소송감이다.

무려 10조원여를 들여서 지은 설비다. 이자율 3%면 하루 이자만 8억원. 한수원의 하루 매출 손실은 30억원, 연간으로는 1.2조원이 넘는다. 원전 정산단가를 kWh당 60원, 전체평균 정산단가를 90원으로 가정하면 전기소비자는 6000억원의 전기요금을 절약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1.4GW급 원전 2기가 저감하는 탄소배출량은 연간 1600만톤을 상회(석탄발전 대체 기준)한다. 이 저감량은 2020년 태양광과 풍력 16.2GW가 저감시킨 탄소배출량의 12배가 넘는다. 가능한 빨리 가동시켜야 한다.

지금의 이런 상황이라면 신한울 1,2호기가 당장 운영허가를 받더라도 상업운전은 올해를 넘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혹시 신한울 1,2호기 허가 지연이 태양광, 풍력 확대의 걸림돌이 될까 우려하는 것은 아닌지. 이런 의심이 들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진정 국민을 위한 결정이 무엇인지 원안위는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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