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결국 제정되었다. 쟁점이 매우 많았던 제정법을 일정을 못 박아 놓고 졸속심의를 하다 보니, 엉성한 법이 탄생하는 것은 예고된 것이 다름없었다. 법안심의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수정되었지만, 유사 입법례가 없고 쟁점이 매우 많은 제정법안인 데다가 매우 짧은 기간에 심의하다 보니, 위헌 소지가 있거나 내용적 정합성, 실효성의 면에서 여전히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이 글에서는 ‘중대산업재해’에 한정하여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경영책임자 개념인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매우 모호하다. 특히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는 표현 자체가 매우 불명확하여 안전보건부서를 총괄하는 임원급 직원만을 가리키는 것인지, 현업부서에서 안전보건업무를 이행하는 위치에 있는 임원은 제외되는 것인지에 대해 그 적용범위를 인식하기 매우 어렵다. 또 이 표현이 자칫 ‘안전보건 담당이사’ 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큰 문제이다. 만약 이러한 의미로 해석된다면, 이는 ‘라인 안전관리 책임’이라는 안전원리에 정면으로 저촉될 뿐만 아니라, 안전보건부서(장) 이외의 라인부서(장) 등 다른 부서(장)의 안전보건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하여 사업장의 안전관리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둘째, 사업장에서는 재해강도·범위의 측면에서 매우 다양한 재해가 발생하고 있는데, 재해강도·범위의 한정 없이 모든 재해에 대해 경영책임자가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규정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 재해강도로 보면 찰과상, 타박상과 같은 경미한 재해도 많이 발생하고 있고, 재해범위로 보면 산업재해 외에 자연재해, 교통재해, 감염병, 과로·스트레스에 의한 질병, 고객·민원인 등에 의한 상해 등 다양한 유형의 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본법은 엄벌에 따른 기본권 제한의 성격이 매우 강하므로, 법률의 명확성에 대하여 보다 엄격한 기준이 요구된다. 그런데 ‘재해 재발방지 대책 수립 및 이행에 관한 조치’ 규정은 재해강도·범위와 수립·이행의 스펙트럼이 광범위하고 다양한 상태에서 정형화하기 어려운 애매한 표현으로 되어 있어, 조치의 어디까지를 관여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문가조차 윤곽을 파악하기 어려워 명확성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

셋째, 경영책임자가 ‘행정기관이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 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에 관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규정 중 ‘이행에 관한 조치’의 내용·범위는, 이행의 스펙트럼이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한 점을 고려할 때, 이 법의 입법목적과 다른 법률조항과의 연관성 등을 고려하더라도 사물의 변별능력을 제대로 갖춘 경영책임자의 이해와 판단으로서도 행위유형을 정형화하거나 한정할 합리적 해석기준을 찾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는 ‘이행에 관한 조치’가 총괄관리 등으로 한정되어 있지 아니한 관계로 조치의 내용·범위가 지나치게 불명확하여 초래되는 문제이다. 그리고 경영책임자가 이행에 관한 조치를 직접 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는 재해예방의 실효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업장 안전보건조치에 대해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등 재해예방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불합리하다.

넷째,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이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불명확하다.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에 있어서, 제3자의 종사자의 안전보건조치에 대한 의무주체가 복수로 존재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예컨대 ① 소유자(A)도 있고 운영자(B)도 있는 경우, ② 소유자(A)도 있고 관리자(B)도 있는 경우, ③ 소유자(A), 관리자(B), 운영자(C)가 별도로 있는 경우에, 본조의 의무를 누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이행하여야 하는지가 매우 불명확하여 실제 안전조치의 이행으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 예상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이상에서 지적한 것 외에도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다행히 시행시기가 공포 후 1년이 경과된 날부터이므로, 시행 전까지 개정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체계 및 내용에 있어 문제가 있는 조항은 시행 전이나 시행 초기에 개정을 하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어떤 일이든 첫 단추를 꿰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 유념하여 국회의 용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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