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입력폼
(이종헌 특파원의 금요아침)세계 에너지 시장과 정책의 근본적 변화가 시작되다
이종헌 S&P Global Platts 수석특파원    작성 : 2021년 02월 02일(화) 12:00    게시 : 2021년 02월 04일(목) 11:14
에너지 문제의 핵심은 시장과 정책이다. 시장에서 다양한 에너지원의 가격이 결정되고 이것이 수요와 공급을 좌우한다. 환경과 안전에 대한 규제나 보조금 등 정책은 에너지 시장의 큰 방향을 정한다. 그래서 에너지는 경제의 영역이지만 정치적 이슈이기도 하다. ‘에너지 안보’라는 말이 낯설지 않고, 각국 정부가 선거를 앞두고 전기요금을 올리기 않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휘발유 가격인상이 큰 정치적 위기로 이어진 사례도 적지 않다. 그래서 에너지 시장과 정책의 변화는 동시에 잘 일어나지 않는다.

2021년, 세계는 지금 에너지 시장과 정책의 근본적 변동을 겪고 있다. 시장의 변화가 먼저 시작되었다. 발단은 ‘혁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미국의 셰일에너지 생산이었다. 지하 2~4km에 수평으로 길게 펼쳐진 단단한 바위에 갇혀있어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것 같았던 셰일에너지가 수평시추와 수압파쇄라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이었던 미국이 갑자기 최대 산유국이 되고 OPEC과 경쟁하는 석유 수출국으로 등장하는 드라마틱한 변화였다. 석유가 고갈된 것이라는 공포를 사라지게 할 정도의 엄청난 변화이다.

소비의 변화가 바로 이어졌다. 환경이슈와 맞물리면서 신재생의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핵심 에너지원으로 등극하고 있고, 세상을 풍미하던 화석연료와 원자력은 신재생을 보완하기 위한 기저(base-load)연료로 힘든 경쟁을 하고 있다. 신재생의 확산과 화석연료의 퇴조 그 변곡이 시작된 것이다. 생산과 소비에서 근본적 변동이 발생하자 에너지의 흐름도 바뀌었다. 중동 산유국이 ‘갑질’하던 세상은 저물고 소비국의 입김이 세지면서 에너지 시장의 중심축이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국가로 이동했다. 한마디로 에너지 시장의 가장 큰 변수인 공급과 수요, 흐름 이 세 가지 영역에서 동시 다발적인 지각변동이 시작된 것이다.

정책의 전환은 시장의 변화보다 더 극적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던 차에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치면서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과거와 같은 탄소중독 사회로 되돌아가서는 안된다는 절박감이 각국 에너지 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불러왔다. 유럽연합, 미국, 일본을 비롯한 세계 70여 개국이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탄소중립 정책을 앞 다투어 선언했다. 심지어 세계 화석연료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세계의 공장’ 중국도 2030년을 정점으로 탄소배출량을 감축하고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천명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2020년 9월 유엔총회 화상연설에서 직접 발표한 것이다.

화석연료를 계속 퍼내자는 트럼프를 물리친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전 지구적 탄소중립 정책의 마지막 단추가 채워졌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 대한민국 등 주요 국가들이 친환경 에너지라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유사 이래 처음이다. 독일 등 유럽의 몇몇 국가들이 먼저 화두를 던졌지만 개별적이었다. 세계는 바야흐로 에너지 대전환의 시대에 돌입했으며 신재생에너지, 탄소중립으로의 거대한 흐름이 시작되었다.

미국과 중국의 참여는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다. 미국은 친환경 에너지에 혁신을 입히고 중국은 그린 산업의 최대 시장이 될 것이다. 돈과 인재가 모여 기술혁신을 일으키고 매력적인 신제품이 출시되어 세상에 퍼질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혁신을 경쟁하며 새로운 세상을 앞당길 것이다. 탄소중립에 먼저 다가선 국가는 이를 세계를 지배할 새로운 도구로 활용할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탄소중립에서도 세계표준을 만들어 다른 나라를 압박할 것이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전기를 100% 신재생에너지로 조달하자는 캠페인인 ‘RE100’은 이미 시행 중이고 애플, 구글, GM 등 글로벌 250개 이상의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제는 협력사에도 기한을 두며 신재생 100%를 요구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기관과 금융기관들도 탄소감축에 소홀한 기업에는 투자를 회수하거나 여신을 제한하고 있다. 제조공정에서 탄소를 줄이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게 된다. 에너지 소비와 탄소배출이 많은 산업구조에,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탄소중립에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인류 역사상 에너지 전환보다 더 큰 변화는 없었다. 지금의 변화는 에너지 시장과 정책의 본질적 변화이며 새로운 단계의 산업혁명이다. 나무에서 석탄으로 넘어오며 인류 근대문명이 태동되었고 석유로 전환되며 현대 기술문명이 출현했다. 이제 다가올 탄소중립의 시대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인류 문명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종헌 S&P Global Platts 수석특파원

금요아침 최신 뉴스
많이 본 뉴스
Planner
2021년 5월
1
2345678
9101112131415
16171819202122
23242526272829
3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