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모란시장에는 아직도 5일장이 있다. 장날에 가보면 북적북적하다. 어렸을 때 눈앞에서 살아있는 뱀을 구경하는 것도 큰 재미였다. 시골의 할머니께서 머리에 아직 풀향기가 가시지 않은 나물을 이고 오셔서 자리 잡으신다. 싸고 좋은 나물 한봉지 바구니에 넣고 흐뭇하게 가는 아주머니도 보인다. 요사이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 5일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주머니에서 휴대폰만 꺼내면 된다. 이런 장터를 플랫폼이라고 한다. 전기도 플랫폼에서 다양한 공급자와 소비자가 거래하면 어떨까. 싱싱한(?) 전기를 가지고 오고 자기 소비패턴에 적합한 값싼 전기를 사는 것이다.

전기요금을 줄이고 싶지만 뭐를 어떻게 해야 할까. 덜 쓰면 그만큼 요금을 덜 낸다는 것은 무책임한 말이다. 벌써 몇 년 전의 이야기지만 에너지시민연대에서 ‘SAVE at 2PM’이라는 슬로건을 내며 전기요금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제시했다. 그렇다. 전기요금 절약도 효과적인 타이밍이 있다. 같은 1kWh라도 시간대에 따라 가치가 다르다. 60원일 때도 있고 200원일 때도 있다. 1000원에서 1만원 이상일 때도 있다.

그런데 1kWh가 1000원 또는 1만원 이상이라고 했는데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전기사용량, 전기요금만 쳐다보며 우물 안에 있기보다 한번 우물 밖에서 생각해보자. 내가 가지고 있던 전기 중 당장 필요없는 전기나 쓰고 남은 전기를 파는 것은 어떨까. 그 전기가 급히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거나 또 다른 비싼 전기요금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의 요금을 줄여주는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전력 장터에서 전력을 거래하는 것이다.

2016년 3월 한국전력을 중심으로 이웃간 전력거래 시범사업이 있었다. 태양광을 통한 전력 자가소비이후 남는전력 거래를 했다. 당시 몇 가지 사정으로 활성화되지 못했지만 해외의 사례들로 인해 2020년 국내에서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광주광역시와 서울시 서대문구에서 다시 실증시범사업 중이다.

전력 수요자원거래시장은 어떠한가. 공장과 건물이 아낀전력 1kWh의 가치는 최대 1만원을 넘어가기도 한다. 이러한 전력거래소와의 거래는 소규모 점포, 상가 사장님과 가정주부들에게까지 확대되었다. 바로 국민DR, 에너지쉼표다. 아낀전력 1kWh의 거래금액은 최대 1300원이다. 소규모 전력중개시장을 통해 전력을 거래하는 길도 이미 생겼다. RE100 이야기가 한참이다. 연간 100GWh 이상의 전력소비 기업은 100%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운동이다. 녹색프리미엄요금제, REC거래, 자가발전설치, 신재생지분투자 등이 방법이 있지만 특히 눈에 띄는 제3자PPA가 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발전량을 한국전력의 중개를 통해 기업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이다. 조그마한 태양광을 가지고 있는 시골의 할아버지가 대기업에 전기를 팔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물론 소규모 전력중개시장의 사업모델 등 이슈해결을 위해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있다. 이웃간 남는 전력거래도 일부 지역에서 실증을 시작한 정도이다. 제3자 PPA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시장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DR도 소규모 점포와 가정에서 아껴서 거래할 수 있는 전력의 양이 미미해서 다른 지원정책과 홍보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전기가 단방향의 선택권 없는 상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정부와 관련기관이 이러한 전력 장터의 첫 바퀴가 굴러가기까지 관심과 지원을 멈춰서는 안된다. 한번 구르기 시작하면 시장에서 가속화 되고 사업화 될 것이다.

형광등 하나 뽑으며 전기를 아끼는 노력도 해야 하겠지만, 스마트하게 나의 패턴에 맞는 싸고 좋은 전기를 구매하는 것은 어떨까? 내가 쓰고 남은 전기를 필요한 사람에게 제 값주고 파는 것은 어떨까?

프로필 ▲건국대 전기공학 박사 ▲한국ESS산업진흥회 이사 ▲분산에너지 활성화 로드맵 WG3 위원 ▲한국산업인력공단 국가인적자원개발 심의위원 ▲물구나무선 발전소(인포더북스) 저자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