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정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박호정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작년부터 그린딜을 추진하던 EU는 최근에 탄소국경세를 통해 기후중립을 2050년까지 달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였다. 탄소국경세는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온실가스 배출비용이 존재하는 지역에 물품이 수입될 때에 수출국의 탄소비용을 고려하여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를 말한다. 주지하다시피 EU의 여러 국가에서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고 있다. 목표연도인 2050년에 기후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정책이 필요한데, 이럴 경우 EU 기업들의 탄소비용 부담이 증가하게 되고 반면 역외에서 수입되는 재화는 경쟁력을 갖게 된다. 지역간 탄소비용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이와 같은 경쟁력 역전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탄소국경세를 도입한다는 취지다. 2018년 세계은행 보고서를 바탕으로 탄소세 수준을 어림짐작해보면, CO2t 당 폴란드의 1달러부터 스웨덴의 139달러까지 상당히 그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얼핏 이러한 탄소국경세는 기후중립 달성을 위한 강력한 정책수단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EU 소재 기업이 역외로 빠져나가는 이른 바 탄소누출을 막겠다는 목표가 담겨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활동이 더욱 위축되자 최근 EU는 경제회복 패키지에도 탄소국경세를 포함시켰다. 즉, EU 내부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계속 추진하되 탄소누출을 예방함으로써 경제도 놓치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WTO 규정에 부합되는지, 국가간 탄소비용의 차이를 어떻게 공정하게 투명하게 평가할 수 있는지 등 많은 이슈가 해소되지 않았기에 탄소국경세의 앞날이 마냥 밝은 것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과 경제를 동시에 살리고자 하는 그린딜의 핵심 정책으로서 EU는 탄소세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EU는 계획이 다 있었던 것이다.

환경적 동기와 경제적 동기가 이처럼 같이 조율이 될 때에 해당 경제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굳건한 토대를 얻게 되며, 또한 사회적 비용에 관한 소모적인 논쟁도 줄여나갈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부문의 탄소비용 인상을 통해 저탄소 발전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온실가스 감축정책이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RE100과 녹색요금제 등 다양한 제도 역시 가시화되고 있다. 그동안 태양광과 풍력 보급이 미진했던 우리나라에서 재생에너지의 확대는 예정된 수순일 것이며, 국제사회에서 온실가스 감축의 리더쉽 또한 발휘할 때가 됐다.

그러나 우리도 온실가스 감축정책이나 배출권 할당계획에 있어서 EU나 미국처럼 국내 산업의 경쟁력 제고에도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경제를 생각할 때 더더욱 그렇다. 국내 산업이 온실가스 감축과 코로나19와 같은 위기를 발전과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긴 호흡이 필요하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물량 비중을 증대시키는 과정에서 수입산에 의존하기 보다는 관련 국내 비즈니스 생태계를 굳건하게 조성할 수 있는 정책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국산화 기술개발이 꾸준히 이루어진 석탄발전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원전 감축으로 인해 원전의 국내 기술이 퇴보하지 않도록 원전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조성할지에 대해서는 시급히 고민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벌써 국내 연구중심 대학의 원자력 학과에서 대학원 진학률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동북아 지역에서 크게 증가한 원전 규모를 고려할 때 원자력 안전 기술인력을 확보하는 측면에서도 심각하게 여겨져야 한다. 한국의 강력한 IT 기술을 활용하여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결합한 전력시장의 고도화를 어떻게 도모할지에 대해서도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즉, 환경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지속가능성을 갖춘 정책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을 도모하되 탄소누출이 아니라 국내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환경과 경제를 동시에 살리는 걸 누가 원하지 않느냐면서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다면, 전문가마다 수십 수백 가지의 답이 나올 것이다. 짧은 이 글에서 우선적으로 답을 하나 제시한다면, ‘속도조절’이다. 환경정책 연구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의 권위자인 하버드대학교의 로버트 스타빈스 교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빨리 달리는 열차를 설계하다 보면, 엉뚱한 역에 들어갈 위험이 있다.” 결과를 예지할 수 없다면 천천히 가는 것도 방법이다.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가 지나치면 국내 기술이 들어설 여유가 없게 되는 게 한 예일 것이다.

프로필

▲서울대 졸업 ▲한국자원경제학회 수석부회장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신재생분과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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