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6기가 동시에 멈춰서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태풍 마이삭이 휘몰아치던 9월 3일, 신고리 1, 2호기와 고리1~4호기가 순차적으로 멈춰섰다. 일부 발전기는 전원공급이 끊기면서 비상디젤발전기가 자동기동되는 아찔한 상황까지 연출됐다. 원전이 태풍의 위협으로 문제가 발생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깝게는 2017년 콩레이가 왔을 때 백색비상이 발령됐고, 2003년 태풍 매미 때도 마이삭과 마찬가지로 동시다발적으로 원자로가 정지된 적이 있다. 그 밖에도 1991년 글래디스, 1987년 다이너, 1987년 셀마, 1986년 베라로 인해 원전이 정지됐다.

원전 정지는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큰 문제가 있다. 첫 번째는 원자로의 안정성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태풍의 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서 원전 리스크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원자로가 태풍으로 인해 직접 파괴되거나 영향을 받진 않겠지만 소내 전력공급이 끊기고 비상디젤발전기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면 후쿠시마급 사고를 마주할 가능성이 있다. 설마.. 하고 치부할 일이 아니다. 실제로 2012년 고리 1호기는 정전 후 디젤발전기마저 작동하지 않아 12분이나 전력이 끊긴 바 있다.

두 번째는 전력망의 혼란이다. 원전은 기저부하를 담당하고 있는데, 영구폐쇄된 고리1호기를 제외하면 용량 4.5GW에 이르는 발전원이 순식간에 사라진 셈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작동 중단시간이 야간이었고, 전력 예비율에 여유가 있어서 전국적인 정전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거나 다른 원전까지 가동중단됐다면 태풍 한가운데서 우리 국민들은 2011년의 끔찍한 순환대정전을 능가하는 공포를 맛보아야만 했을 것이다.

정부 부처들의 안이한 인식도 문제다. 2017년 전력거래소가 작성한 ‘자연재해에 따른 대규모 발전단지 정지시 전력계통영향 검토’ 보고서를 보면 태풍으로 인한 발전단지 정지하는 시나리오는 화력발전소에만 국한돼 분석돼 있다. 원전은 지진이 발생하는 시나리오에만 등장하는데, 이는 기후위기와 중앙발전원의 복합적 영향과 원인을 무시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으로 총 6기의 발전이 정지됐고, 파도와 강풍의 영향으로 다량의 염분이 유입돼 고장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이 상황은 우리의 잘못된 전제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경고해주고 있다.

게다가 극단화되고 있는 기상이변은 중앙집중형 발전원에 대한 우리의 그릇된 신화를 더욱 흔들어댈 것이다. 태풍을 비롯해 폭염, 한파, 가뭄, 홍수 등은 전력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세력을 키워나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번 태풍으로 태양광과 풍력발전원도 피해를 입었지만, 분산형 발전원이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서도 전력안정성을 해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마이크로그리드 기술 발달로 소규모 전력망에서는 손쉽게 제어나 보완이 가능하다. 위험분산 차원에서 비상전원시스템은 다계통화해야 하므로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를 활용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훨씬 유리하다.

그간 우리는 원전과 화전으로 대표되는 중앙집중형 에너지시스템을 금과옥조로 삼아왔다. 소규모 발전원은 간헐성과 경제성을 이유로 철저히 터부시됐다. 그러나 기후위기시대는 다르다. 온실가스 배출이 없다는 점에서도 유리하지만, 리스크 관리차원에서도 분산형 시스템이 유리하다는 점 역시 우리가 왜 에너지체계 자체를 바꿔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생산단가로 대표되는 경제성을 토대로 외부비용과 사회적 비용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혹독해진 기후위기는 전력시스템의 경제성과 외부성이 분리되지 않는 주제라는 점을 계속 환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안전하게 운영․관리할 수 있는 지침을 강화와 더불어 중장기적으로 분산형 전원시스템으로 가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유럽 선진국들은 이미 지역자립형 에너지체계로 전환하고 있지만 우리의 인식은 여전히 대형발전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늦었다. 지금 전환하지 않으면 이제 곧 비싼 대가를 치르고 전환‘돼야’할 시기가 온다.

-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서울 노원병)

- 국회 산업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

- 더불어민주당 미래전환-k뉴딜위원회 그린뉴딜분과위원장

-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비서실장(前)

- 민선9~10대 노원구청장(前)

-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비서관(前)

- 서울특별시의회 의원(前)

김성환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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