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법학박사)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법학박사)

“훌륭한 입법자는 죄에 대해 벌하기보다 그것을 예방하는 일에 힘쓰고, 신체형을 가하기보다 양속이 뿌리내리도록 하는 일에 노력할 것이다.” 일찍이 몽테스키외가 법사상의 성서라고 불리는 ‘법의 정신’에서 역설한 경구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시스템 개선보다는 엄벌로 치닫고 있는 안전법규를 보면서 정부에 무엇보다 던져주고 싶은 말이다.

엄벌을 중요한 수단으로 삼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엄벌만능주의 경향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근대형법의 금자탑이라고 평가받는 고전에서는 이 엄벌만능주의를 과연 어떤 시각으로 평가했을까.

몽테스키외는 규범 준수의 기강이 느슨해지는 원인은 범죄를 처벌하지 않은 결과이지 형벌을 경감한 결과가 아니라고 하면서 엄벌만능주의의 경향에 경종을 울렸다. 이는 규범 준수를 담보할 것으로 기대되는 요소로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제재의 ‘강도’가 아니라 제재의 ‘개연성’이라는 것임을 말해 준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근대적 형사법제의 토대가 된 벡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에서도 “범죄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형벌의 잔혹성이 아니라 형벌의 확실성에 있다”며 유사한 주장을 한 바 있다.

엄벌만능주의에 대한 몽테스키외의 비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권위주의 정부는 불편한 일이 생기면 그 일을 교정하고자 종전의 법을 집행하는 대신에 그 해악을 막을 가혹한 형벌을 새로 만든다. 그로 인해 정부는 힘을 낭비하고 국민들은 금세 그 무거운 형벌에 익숙해져 예전의 가벼운 형벌 정도로 느끼게 된다. 벌에 대한 공포는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끊임없이 더 무거운 벌을 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종전의 안전관계법을 보완하거나 제대로 집행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졸속으로 제정한 우리나라 정부에 시사하는 점이 풍부하다.

몽테스키외의 엄벌만능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은 계속 이어진다. 형벌을 받고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것은 폭정의 나라이며 부당한 법집행에 대한 반응이라고 보았다. 더 나아가 잔혹한 형벌에 의해서만 그 나라의 범죄가 억제된다면 그것은 대부분 폭정의 결과라고 간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안전관계법을 위반했다고 처벌을 받은 사람 중에 과연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적발을 위한 적발에 걸려들었다고 생각하거나 재수가 없어 처벌받게 됐다고 생각할 뿐이다. 안전관계법의 규범력과 안전행정에 대한 신뢰가 땅으로 추락했다는 방증이다.

엄벌이 정의인 양 생각하면서 죄질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강한 처벌에 의지하려고 하면, 얼마 안 있다가 역사 속에서 사라진 궁형, 태형, 화형과 같은 반인도적 형벌을 안전관계법에 부활해야 할 것이다.

몽테스키외와 벡카리아의 엄벌만능주의 비판은 주로 고의성이 강한 형사범(자연범)을 염두에 둔 것이었지만, 이 비판은 고의성이 약한 행정범(법정범)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아니 고의성이 약한 만큼 행정범에 대해선 더욱 설득력 있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엄벌보다 더 위험한 법이 있다. 바로 애매하고 명확하지 않은 법이다. 벡카리아는 불명확한 법조문의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법의 불명확성 역시 명백히 또 다른 해악이다. 법조문이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표현으로 돼 있다면, 이는 최악이다. 그럴 경우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신체·자유가 어떻게 될지를 스스로 예측할 수 없게 되고, 그 때문에 법조문을 다루는 몇몇 사람들의 처분에 맡겨지게 된다.” 중대재해처벌법 등 안전관계법에 수두룩하게 존재하는 지나치게 불명확한 개념과 표현이 법치주의에 얼마나 위협적인 것인지를 호소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몽테스키외와 벡카리아는 250년도 더 지난 시기에 살고 있는 우리를 향해 힘주어 말한다. 안전법제의 실효성과 집행력을 높이고 재해예방의 인프라를 충실히 정비하는 것이 엄벌만능주의보다 훨씬 합리적인 일임을. 계몽주의 사상가의 법철학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프로필

고용노동부 본부 산재예방정책과장, 국제협력담당관, 성남지방고용노동지청장, 노동법이론실무학회 부회장, 안전학회 정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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