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배선기구, 전선, 시공 등 전 산업분야 수급 불안정
민간 발주사, 에스컬레이션조항 적용 안되는 경우 다수
전기관련 업계 “부품 가격상승 납품가에 반영해 줘야”

최근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반도체와 메인보드.
최근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반도체와 메인보드.

[전기신문 양진영 기자]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반도체의 수급 불안정은 전기업계에 큰 파장을 미치고 있다.

조명과 배선기구 제조업체들 또한 반도체 품귀현상으로 고통받고 있다. 부품인 PCB, 4.3Inch LCD, Custom LCD, LED칩, 전류센서IC, MCU, SMPS, 미터링IC 등 생산에 수많은 반도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배선기구 제조업 관계자는 “B2B나 B2G 사업에서는 2~3년 전에 계약을 맺기 때문에 현재 폭등한 반도체 가격의 반영이 안되고 있다”며 “더군다나 가격이 폭등했음에도 제품 수급이 어려워 평소 4주 정도 걸리던 반도체 수주가 30주 가량으로 늘어났다”고 토로했다.

이어 “재고가 소진되면 발주처에 제품 공급을 제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다른 부품들의 가격까지 올랐다는 주장도 있다.

또 다른 배선기구 관계자는 “반도체 부품 가격 상승으로 인해 비반도체 부품들의 가격도 덩달아 상승했다”며 “반도체 재고를 쌓아두려는 업체들이 반도체를 대량구매를 하다 보니 다른 부품들도 덩달아 공급이 부족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력계량기 제조업계 또한 상황은 비슷하다.

계량기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핵심부품인 CPU의 수급이 어려운 상황으로 이에 따라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원자재 및 부품 값이 적게는 10%, 많게는 30%까지 올랐지만 앞으로도 더 오를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계량기 제조업 관계자는 “현재 납품이 가능한 업체들은 수급보다는 기존 재고를 소진하고 있는 곳이 많다”며 “선 발주 개념이라 아직 공급까지는 시간이 있지만 CPU뿐만 아니라 다른 부품들의 가격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가가 많이 올라 웃돈을 주고라도 미리 확보를 많이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전기업계에서 중요 원자재로 꼽히는 구리가격의 상승으로 전선업체와 시공업체가 겪고 있는 애로도 크다.

구리는 전선을 제조하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구리 가격의 등락은 전선업체에 직접적인 영향으로 이어진다.

대기업들은 계약체결과 납품까지 텀이 있으면 공급시점의 구리 가격을 최종 납품단가에 반영하는 ‘에스컬레이션’ 조항을 계약에 포함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처럼 구리 가격이 오르면 매출 규모도 확대된다.

반면 당월 생산한 제품을 당월 납품하는 비중이 큰 중소 전선업체들은 급등하는 구리 가격을 보며 고민이 크다. 대기업과 달리 당장 제품 최종가에 구리 가격이 바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 당장 구리를 사지 않으면 내일 더 비싼 가격에 사야 할 가능성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전선업계 관계자는 “구리 시세가 급등하며 어제 가격과 오늘 가격이 너무 큰 차이가 난다”며 “구리의 경우 오를 때도 무섭지만 내려갈 때도 무섭게 떨어지기 때문에 큰 리스크를 떠안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구리 가격 폭등은 이미 다른 원자재의 가격 상승으로 부담을 겪고 있는 전선업체들에 더욱 큰 걱정을 안길 것으로 보인다.

석유화학 원자재 가격의 경우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최대 141% 폭등하며 케이블 제조에 사용되는 컴파운드, PVC, VCM(Vinyl chloride monomer; 염화비닐모노머) 등의 가격상승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구리 가격 급등으로 발주가 감소할 수 있다는 점도 걱정이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경우 발주처 또한 비용부담을 겪게 돼 발주 자체를 지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전선업체 대표는 “발주처도 구리 가격 상승을 보며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며 “구리 가격이 오를 것을 예상해 발주를 당길 수도 있지만 반대로 비용적 부담과 구리 가격 하락을 기대하며 발주를 미룰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시공사 또한 같은 맥락에서 고민이다. 관공서가 내는 발주의 경우 국가계약법에 따라 에스컬레이션 조항이 적용되지만 사기업들에 같은 기대는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상승한 원자재 값을 반영해주면 공사비 또한 오르기 때문이다. 결국 부담은 고스란히 관련 업체들이 떠안고 있다.

공사업체 관계자는 “에스컬레이션 적용도 안되는 데 당장 적자를 보면서 일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라며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면 결국 업계의 부실공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더 큰 문제는 지금과 같은 원자재 가격 폭등세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씨티그룹의 맥스 레이튼 애널리스트는 “구리 슈퍼사이클의 정점은 미국과 중국이 팬데믹에서 급속 회복 중인 바로 지금”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올해에만 정제 구리 재고가 50만t 줄었다며 올해 안에 구리 가격이 t당 1만2000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명업계 관계자 또한 “당분간 부품 부족과 가격 폭등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업계에서는 최소 올해 말까지는 이 현상이 해결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 제조업계에서는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를 돌파하기 위해 앤드 유저인 사기업의 상생정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른 공사업체 관계자는 “사기업의 발주 공사도 정부 발주처럼 에스컬레이션을 반영해준다면 업체들의 손실이 덜할 것”이라며 “가격 급등에 맞춰 바로 최종가에 반영되기까지는 어렵더라도 현실성 있는 최종가를 만들어주는 게 상생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배선기구 관계자는 ““B2B의 경우 건설사들이 부품 가격상승을 제품 가격에 반영해 줘야 한다”며 “일반적으로 기자재 업체들은 연 단가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반도체 가격 폭등 전 기준으로 제품을 공급해야 하는데 건설사가 최근 반도체 가격 폭등을 납품가에 반영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부품 수급문제로 납기일을 맞추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건설사 차원의 대책회의를 진행하고 업계 상황을 청취해 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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