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
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

미중 갈등이 격해지고 반도체 전쟁이 본격화하면 할수록 주목받는 기업이 있다. 대만의 반도체 기업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다. 세계 최초, 최대의 파운드리(Foundry) 기업이다. 반도체 제조만 맡는 위탁생산 전문기업을 말한다. 창업주 모리스 창(張忠謀)은 흔히 ‘대만 반도체의 아버지'로 불린다. 모리스 창은 1987년 TSMC를 창업한 이후 2018년까지 회사를 이끌었다. 1931년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서 태어난 창 전 회장은 중국의 국공내전과 중일전쟁을 피해 난징과 광저우, 홍콩 등을 전전하다 미국으로 이주했다. MIT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미국의 반도체 대기업이던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부사장까지 지낸 뒤 54세였던 1985년 대만으로 돌아왔다. 모리스 창 회장은 당시 대만 정부가 첨단 산업 육성을 위해 만든 공업기술연구원(ITRI)의 원장을 맡고 파운드리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정부에 제안했다. 모리스 창 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인 대만 정부는 TSMC 설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모리스 창 회장이 파운드리 사업을 구상한 것은 미국이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흐름에 올라타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반도체 산업은 미국과 일본의 종합반도체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종합반도체기업이란 설계와 생산을 모두 맡는 기업이다. 하지만 모리스 창 회장은 설계 업체들과 경쟁하지 않고 오로지 주문을 받아 위탁생산만 하는 방식의 사업성에 주목했고. 이를 세계 최초로 적용해 설립한 회사가 바로 TSMC였다. 그 결과 생산설비 없이 설계만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들은 TSMC에 반도체 주문 제작을 의뢰해 안정적인 사업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고, TSMC도 급성장할 수 있었다. PC, 모바일 산업 고도화와 함께 TSMC의 매출도 수직으로 상승했다. 본격적으로 도약의 계기를 맞은 것은 스마트폰 등장 덕분이었다. 애플은 아이폰을 개발하면서 필요한 반도체를 TSMC에 주문했다. TSMC는 애플, 퀄컴 등을 고객사로 확보한 이후에 전성기를 맞았다. 2020년 말 기준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는 54%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17%로 2위다. 올 1분기의 영업이익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두 배였다. 공급 부족으로 일어난 요즘의 '반도체 쇼크'도 사실상 TSMC의 반도체 생산량이 줄어든 데서 촉발됐다. TSMC의 주식 시가총액은 현재 6000억 달러 정도로 세계의 반도체 기업 가운데 1위다.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상 대만 정부다. 창업자라고는 하지만, 정작 모리스 창 회장의 지분은 본인과 가족들을 다 합쳐 0.5%뿐이다. 반도체는 대만이 세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유일한 산업이다. 반도체는 대만의 지정학적 가치도 높여 놓았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고 미국 중심의 반도체 동맹을 구축하려고 한다. TSMC가 있는 대만은 핵심 파트너다. 지난 4월 바이든 대통령의 ‘반도체 전략회의’에도 초대됐던 TSMC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6곳 지을 예정이다. 미국이 제재하고 있는 중국 화웨이와의 거래는 이미 작년에 끊었다. 지난 1989년 12월, 당시 삼성 이건희 회장은 대만 출장길에 모리스 창을 스카우트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돌이켜 보면 세계 반도체 산업의 역사가 바뀔 수 있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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