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신문 윤정일 기자] 1984년 미국 프리스턴대 수잔 피스크 교수와 UCLA의 셸리 테일러 교수는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는 이론을 발표했다.

‘인지적 구두쇠’는 사람들이 최대한 간단하고, 두뇌 에너지를 적게 쓰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이론이다.

어떤 특정 상황, 현상에 대해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파악하고, 분석하며, 추론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깊게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는 현대 도시인들은 이 과정을 번거롭게 여기고 대충 판단해서 결정해버리는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이런 메커니즘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고정관념 또는 편견이다.

국내 LED조명산업이 ‘인지적 구두쇠’ 현상에 따라 범하는 대표적인 과오 중 하나가 바로 중국산은 ‘싸구려’라는 고정관념이다.

분석자료나 근거 없이 LED조명을 비롯해 중국에서 생산돼 국내로 유입되는 모든 전기용품과 공산품은 싸구려, 저질 제품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게 바로 국내 제조업계의 ‘인지적 구두쇠’다. ‘대륙의 실수’라고 폄하되는 가성비 좋은 중국산 제품도 ‘인지적 구두쇠’의 영향이다.

최근 중국산 김치에 대한 불신을 야기했던 ‘알몸배추’ 사건과 같은 사례는 이런 고정관념을 지속적으로 경화 (硬化)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제조업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국내 업계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중국에는 싸구려부터 프리미엄까지 모든 제품이 다 있다”고 설명한다.

‘중국산=싸구려’ 이미지는 중국에서 싸구려 제품만을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는 수입·제조업자들로 인해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동안 국내 제조업계는 순진하게 이 이미지에 사로잡혀 ‘중국산’ 제품을 철저히 무시해왔고, 국산품이 무조건 중국산보다 월등하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사로잡혀왔다.

하지만 중국산 제품은 이제 단순 ‘싸구려’ 제품 이미지를 벗고, ‘싸고 품질까지 괜찮은 제품’으로 거듭나며 국내 제조업계를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저압차단기 분야의 친트, LED컨버터 업계의 인벤트로닉스 등은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인지도와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중국의 글로벌 제조기업들이다.

이들 기업 역시 한국에 진출해 국내 기업과 가격뿐만 아니라 품질로도 경쟁하고 있다.

LED컨버터를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과거에는 저가 중국산 제품이 국내로 유입돼 품질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중국산=싸구려’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제는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면서 “저렴한 가격에 이제 품질까지 확보한 제품들이 들어오면서 국내 기업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제 국내 제조업계도 ‘중국산=저가 제품’이라는 ‘인지적 구두쇠’를 깨고 중국산 제품을 다시 바라봐야 한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의 제조업 굴기를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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