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명, 220억원. 지난 4월 이천 물류센터 화재로 발생한 사망자와 피해 추정액이다.

829명, 47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화재로 인한 사망자와 대형화재(사망자 5명 이상, 사상자 10명 이상, 재산피해액 50억원 이상 중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발생 건수다. 연평균으로 봐도 1년에 9.5건의 대형화재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화재 시 초기진압과 대피에 중요한 것은 당연 비상등과 스프링클러다. 그리고 화재 상황에도 이를 작동시키는 것이 이들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소방용 케이블’이다. 그런 소방용 케이블과 관련된 기준이 중국과 함께 가장 낮다면 누가 믿을까.

전선업계는 오래 전부터 소방용 케이블의 내화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내화기준은 얼마의 온도에서 얼마나 버티냐가 관건인데, 영국은 950℃급(3시간), 호주 1050℃급(2시간), 중동아시아 830℃급(2시간),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830℃급(2시간)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750℃급(1시간30분)이 기준이다. 이는 실제로 화재시에는 약 15분 정도 버티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준이 생기던 90년대 초반, 낮은 높이 소형 건물들이 처음 생길 당시 적용된 것으로 15분이면 대피까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15층은 물론이고 30층이 넘는 초고층 아파트와 건물이 즐비 하는 요즘. 고층에 있는 사람이 화재 시 연기를 피해서 15분 만에 대피할 수 있을까? 최근 대형화재로 꼽히는 이천 물류센터는 어떠한가. 지하 2층, 지상 4층으로 건물면적 1만1043㎡. 축구장 한 개 반의 크기다.

내화기준을 올리는 건 어려울 수 있다. 아니면 혹시 케이블의 가격이 비싸질 것이라고 염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수의 전선업체는 ‘아니’라고 한다. 전선업계는 이미 기술을 갖추고 있으며 1000℃가 넘는 케이블까지 해외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 또 케이블의 가격은 원래 건축공사에서도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만 그중에서도 상승 폭은 ‘미미’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왜 아직도 정부가 케이블의 내화기준을 후진국 수준으로 내버려 두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정부의 최우선 의무인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소방용 케이블의 내화기준 향상은 더 이상 무시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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