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
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

“대통령의 말하는 방식이나 트위터는 싫어할 수 있다. 그러나 선거는 더 훌륭한 사람을 뽑는 게 아니다. 당신이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다면 트럼프에게 4년을 더 주자.” 골프 황제 잭 니클라우스가 대통령 선거 직전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하자면서 남겼던 트윗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아직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트럼프는 법적인 분쟁을 이어가려는 모양이지만 큰 의미는 없다. 내년 1월 20일부터 미국 대통령은 바이든이다. 바이든이 승리한 것은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의 투표뿐 아니라 트럼프 집권 4년 동안 극단적 분열과 대립, 퇴행적 행태에 유권자들이 질렸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 보도로 보는 트럼프는 악(惡)의 화신이다. 그러므로 그의 패배는 정의의 승리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는 7300만 명을 넘는다. 4년 전보다 오히려 1000만 표를 더 얻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 역사상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낙선자고, 오바마 대통령의 최고 득표 기록에도 앞선다. 트럼프의 인기는 개표 중단을 요구하며 벌어지고 있는 전국적인 시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대통령 선거와 함께 실시된 의회 선거에서 바이든의 민주당은 이기지 못했다. 상원에서는 의석을 전혀 늘리지 못해 여전히 소수당이고, 하원에서는 아직 다수당이기는 하지만 의석은 선거전보다 오히려 줄었다. 트럼프의 패배가 지난 4년간의 부정이나 전면적인 거부를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 4년간 트럼프는 증오와 폭력을 조장하고 혐오와 차별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으며 민주주의와 법치를 파괴했다. 하지만 최소한의 도덕성과 자질도 갖추지 못한 트럼프가 미국인 절반의 지지를 받는 것은 이유가 있다. 트럼프의 등장은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와 그 패자들의 불만을 동력으로 한 것이었다. 현상의 배경에는 미국의 극심한 불평등과 양극화, 비백인과 외국인 이주자 비율이 늘어난 인구 구성비의 변화, 그에 따른 미국 주류 백인의 상실감과 분노,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2007년 미국 주택금융시장 붕괴로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 이후 수많은 하층민과 중산층이 파산, 실업,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빈부격차가 더 벌어졌고 공동체는 무너져 내렸지만, 진보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경제의 양극화는 정치의 양극화를 낳는다. 트럼프의 독특한 언행과 세계관, 그리고 그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의미하는 이른바 트럼프주의는 정치적으로는 우파 보수주의, 미국 우선주의와 힘의 논리에 기반을 둔 배타적 국가주의, 경제적으로는 반세계주의, 노골적인 친기업 시장주의와 규제 완화,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이민자에 대한 수용 거부를 특징으로 갖고 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 실제로 감세와 규제 완화,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그의 정책은 먹혀들었다. 공화당은 비록 이번에는 선거에서 졌다고 해도 미래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떠나지만 그를 탄생시키고 떠받친 구조는 그대로 남아있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대선에서라도 다시 재선을 노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설사 트럼프 본인이 아니더라도 제2의 트럼프는 나타날 것이다. 효과가 입증된 트럼프식 정치도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생각이 다른 집단에 대한 증오를 기반으로 편을 갈라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 말이다. 미국만 그런가.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