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해외선 앞다퉈 투자…한국은 선도형 모델인데도 포기

그동안 한국의 산업은 해외 선진국에서 내놓은 기술을 따라가는 추격형 시장이었다. 스마트폰과 자동차, 반도체 등 다양한 산업들이 그동안 추격형 전략의 한계를 느끼며 탈추격 전략 마련에 매진했다.

에너지저장장치(ESS)는 이 같은 추격형 구조를 뒤집어 선도형 산업으로 나아가는 대표적 사례다. 민간의 ESS 사업화 사례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을 뿐 아니라 뛰어난 배터리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서 활약하는 기업들도 보유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2017년부터 이어진 화재사고 이후 국내 ESS 시장의 침체가 시작됐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ESS 시장규모는 3.7GWh 수준이다. 전년 대비 33.9%가량 줄어들었다는 게 현대경제연구원의 설명이다.

업계는 ESS 시장의 하락세로 한국 산업계의 숙원인 선도형 산업구조 확보를 놓칠 수도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세계시장이 점차 커져가는 시기에 세계시장을 선도해야 하는 한국 ESS 산업이 오히려 쇠퇴하고 있어서다.

글로벌 ESS 시장은 2018년 11.6GWh에서 지난해 16GWh로 37.9% 성장세를 보였다.

Markets and Markets의 시장분석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15억달러 수준이었던 세계 ESS 시장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오는 2024년에는 229억달러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같은 전망은 선진국들의 적극적인 ESS 투자를 통해 더욱 힘을 얻는 모양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2024년까지 1.3GWh 설치를 목표로 전력사업자들의 ESS 설치를 의무화했다. 중대형 ESS를 설치할 경우 최대 30% 수준의 투자 세액감면 혜택도 제공한다.

이뿐 아니라 ESS 사업자가 전력보조서비스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 주파수조정용 전력시장 참여 길을 열었고, 비용보상도 실적과 시장가격에 의해 결정될 수 있도록 밑바탕을 다졌다. 이처럼 ESS의 사업화를 지원하면서 미국 전역에서 서비스 공급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게 업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펜실베이니아, 뉴저지, 메릴랜드 지역을 시작으로 주파수조정용 ESS 도입이 확대되고, 미국에서 진행 중인 ESS 사업의 절반 이상이 주파수조정용으로 활용 중이다.

유럽도 각국 정부의 주도 아래 다양한 실증 및 보급 확대 대형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모양새다. 독일과 프랑스는 태양광 주택 리튬이온전지 실증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다. 영국은 1700만파운드 규모의 에너지저장기술 보급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일본도 지난해 발전차액지원제도(FIT) 폐지 이후 태양광 소유자들의 ESS 설치가 활발히 진행되는 모양새다. 또 내년 도입될 예정인 신규 전력구매제도가 ESS 도입의 촉진제 역할을 할 전망이다.

후지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17년 781억엔 수준이었던 일본의 ESS 시장 전망은 올해 1983억엔, 2025년까지 2454억엔 수준으로 성장이 기대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의 앞선 ESS 실증 경험 등은 세계시장 선도를 위한 큰 자산이 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시장이 다소 위축됐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지난해 설치된 ESS 가운데 23%가 한국에서 설치됐다.

업계는 정부가 지금 같은 시기에 ESS 활성화 대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화재사고로 인해 최근 ESS 활성화 정책이 주춤한 시기인 만큼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번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게 업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추격형 산업으로 경제를 성장시켜 온 한국은 최근 선도형 산업 모델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으며 ESS가 이 같은 부분에서 성공적인 모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최근 ESS 시장의 분위기와 정부 정책들을 보면 산업을 키우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ESS 시장 활성화 정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세계시장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