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업계 EPR, 의무율 아닌 의무량 방식 적용해야"
기술개발 통해 수출 경쟁력 높여야

오는 2022년은 전선업계가 미뤄온 숙제를 검사받게 되는 해다. 플라스틱 제품의 제조·수입업자 및 협약의무이행단체에 협약을 체결하고 이에 따라 폐기물 부담금을 면제하는 ‘자발적 협약제도’가 ‘EPR(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로 전환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EPR은 제품 생산자나 포장재를 이용한 제품의 생산자에 그 제품이나 포장재의 폐기물에 대해 일정량의 재활용 의무를 부여하고 미 이행 시 재활용에 소요되는 비용 이상의 벌금을 생산자에 부과한다. 자발적 협약에서 EPR로 전환될 경우 필연적으로 전선 업계의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에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은 올바른 EPR 전환을 위한 연구를 올해 초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에게 맡겼다. 플라스틱 재활용에 대해 국내 누구보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어 일명 ‘쓰레기 박사’로도 불리는 홍 소장에게 전선업계의 EPR 전환에 대해 물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 부탁드린다.

“정부에서 폐기물 부담금 대상인 전선피복을 EPR 제도 품목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전선피복의 경우 합성수지 등 플라스틱을 활용하는 만큼 현재 자발적 협약을 통해 재활용하고 있는데 법적으로 전선 생산자에 재활용 의무를 부과하려 하는 것이다. 생산자 입장에서 부담금을 통해 전선 피복의 재활용을 책임을 지고 있지만 합리적인 시점에서는 사회적으로 재활용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전선 생산자도 합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필요 이상의 비합리적 기준이 적용되면 생산자에 부담이 된다. 생산자 입장에서 합리적인 생산자의 역할을 모색하는 게 과제다.”

▶어떻게 이번 프로젝트를 맡게 됐나.

“그동안 자발적 협약 관련 조언이나 관련 과제를 계속해왔다. 자발적 협약이 2008년부터 시작됐는데 그때부터 활동해왔다. 프로파일, 바닥재, 파이프, 컨테이너 팔레트, 어망, 인조잔디 등 재활용 대상인 거의 모든 품목을 다 해본 경험이 있다. 자발적 협약과 EPR을 연구하려면 맥락을 이해하는 지식이 필요하다. 자발적 협약과 EPR이 어떻게 연계되고 차별성이 있는지 전반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사전지식은 파악하는 데 6개월이 걸릴 정도로 복잡하다. 또한 생산자 입장에서 일방적인 주장을 펼친다고 해서 정부가 들어주지 않는다. 억울하고 불합리한 부분을 생산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합리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제도의 문제가 있거나 개선요지가 있거나 하는 부분을 환경부가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전선 생산자가 재활용 책임을 지는 것은 맞지만 생산자에 주어진 것 이상의 비용부담이 발생하거나 지킬 수 없는 규제 등이 발생하지 않게 준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방식으로 쟁점을 정리하는 역할도 할 것이다.”

▶왜 자발적 협약과 EPR이 문제가 된 건가.

“자발적 협약과 EPR이 국회에서도 많은 문제 제기를 받으며 법이 개정됐다. 일부 중소기업들은 자발적 협약이 아니라 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폐기물 부담금 자체를 없애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발적 협약이 생산자들의 폐기물 부담금 회피 수단이 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폐기물 부담금으로 100원을 내야 하는데, 자발적 협약을 통해 20원만 내고 자기들의 역할을 다했다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EPR 생산자가 폐기물 부담금을 내는 사람보다 돈을 더 많이 내기도 한다. 계속 문제 제기가 된 부분이다. 자발적 협약 자체가 원래 한시적인 제도였다. 그러나 2008년 시작된 후 10년 이상 늘어지면서 생산자들의 폐기물 부담금 납부 기피 수단으로 굳어진다며 법률이 바뀐 것이다. 이에 따라 이제 5년까지만 자발적 협약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PR을 준비하며 전선업계에서 재활용률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화학적 기술 개발을 해야 한다. 지금은 녹이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재활용 가능한 재질이 한정된다. 나머지 품목은 다 태워서 하는 법도 있고 제3의 방법으로 열분해도 필요하면 고려해야 한다. 기술 개발이 필요한 부분으로 조합의 의지만 있다면 정부의 지원이 가능할 것이다. 환경산업기술원의 R&D 과제에서 할 수도 있다. 일단 조합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부분이다.”

▶연구를 진행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

“전선 재료 가운데 엑셀파이프의 경우 플라스틱에 ‘가교’라는 첨가제가 들어가 물질 재활용이 안 된다. 지정폐기물도 아니라서 애매한 위치에 있다.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에서 에너지 회수라는 게 있다. 태우는 것도 재활용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발적 협약에서는 에너지 회수가 빠져 있다. 엑셀파이프는 에너지 회수 용도로 하면 재활용이 되는데 자발적 협약체계는 물질 재활용에 기준이 맞춰져 있어 안 되는 거다. 다만 에너지 회수의 경우 70%를 넘을 수 없다. 에너지 회수를 인정해주면 태우는 방식으로 너무 쉽게 재활용하려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30%는 물질 재활용을 해야 한다. 전선 쓰레기의 통계가 없는 부분도 있다. 출고량도 명확하지 않고 폐기량 발생도 명확하지 않아 분석이 어렵다. 전선조합의 자발적 협약 업체들은 10년치 출고량 데이터를 갖고 있지만 비조합 업체들의 경우 몇 %인지 알 수 없다.”

▶전선업체의 EPR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나.

“일단 업체들은 당연히 최소 부담으로 의무를 이행하고 싶어 하겠지만 EPR이 시행되면 업체들의 부담이 높아지는 건 피할 수 없다. EPR이 시행되면 업체들의 부담이 소비자들에게도 비용 증가로 나타나게 되는데, 업체의 부담이 급격하게 증가하게 될 경우 시장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따라서 소프트랜딩으로, 업체들이 수용가능한 수준으로 EPR이 적용돼야 한다.”

▶전선의 경우 폐기물 발생까지 오래 걸려 의무율 산정이 어려울 텐데.

“의무율이 아니라 의무량 방식으로 해야 한다. 의무율 산정에 필요한 당해연도의 출고량만 해도 당장 100일지 200일지 모른다. 출고량 변동에 따라 의무량도 왔다 갔다 하게 된다. 가령 경기 변동에 따라 갑자기 상황이 확 늘어나면 의무량도 같이 늘어난다. 반면 폐기물은 확 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의무 달성이 어려워진다. 또 반대 상황이 되면 재활용 실적이 매우 증가하게 된다. 업체들은 재활용량이 의무량을 초과하며 지원금이 줄어들게 돼 난리가 날 것이다. 제도운영의 부담도 증가할 것이다.”

▶전선업체들이 EPR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EPR은 앞으로의 추세다. 재생원료를 쓰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플라스틱을 쓴다면 재생원료를 쓰라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다. 수출 산업도 표준이 바뀌는 것이다. 재활용하면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염려도 있는데,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업체의 기술력이고 경쟁력이다. 오히려 양질의 재생원료를 쓸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는 게 앞으로 산업 경쟁력이 될 것이다. 해외수출을 고려해 지금부터 미리 대비해야 한다. 앞으로 플라스틱과 관련해 다채로운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재생원료에 대해 끌려갈 게 아니라 해외시장을 노린다면 플라스틱 사용에 있어 재생원료를 어떻게 많이 사용할지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앞으로 플라스틱 재생원료 사용은 단순히 환경을 생각하는 가치 소비를 넘어 하나의 당연 산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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