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선 전자부품연구원 에너지IT융합연구센터장
함경선 전자부품연구원 에너지IT융합연구센터장

2019년 발표된 정부의 미세먼지 관리 종합계획에서는 2024년까지 총 85만대의 전기차를 보급한다고 한다. 이 전기차들이 한 번에 충전한다면 필요한 전기의 양이 과연 얼마나 될지 상상해보자. 차량 한 대당 배터리 용량을 50kWh로 가정했을 때 2024년 우리나라 전기차 배터리 총 용량은 4만2500MWh에 이르게 된다. 이것을 우리나라 전체 전력설비의 4.3%를 차지하는 보령발전소의 전력 생산량에 빗대어 보면 얼마나 많은 양인지 짐작할 수 있다. 과거 실적을 토대로 이 발전소가 하루 평균 64,500MWh를 발전한다고 보면 어림잡아 60%가 넘는 양을 전기차를 충전하는데 쓴다고 봐야 한다.

전기차가 위의 계획에서 말하는 ‘무공해차’의 명분을 갖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그것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원천이 깨끗해야 한다. 하지만 원자력, 석탄, 천연가스, 그리고 신재생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진 전기를 큰 욕조에 담고 그것을 퍼다 쓰는 지금의 방식은 그렇지 못하다. 친환경 에너지를 골라 쓰는 지혜가 요구된다.

‘친환경 에너지’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태양과 바람이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은 2030년까지 국가 전력의 20%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하겠다는 것인데, 이 중 태양광과 풍력발전이 가장 비중 있는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사실 이렇게 얻어진 전기는 깨끗하겠지만 날씨에 따라 생산량이 수시로 달라지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만 생산할 수 없다는 점이 큰 문제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크게 변할 경우, 필요한 양에 맞춰 전기를 공급해야 하는 국가 전력망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이 위험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필자는 앞서 말한 전기차의 충전 수요와 자연에너지의 변동성 위험을 연결할 수 있는 기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전기차가 자연에너지로부터 얻은 전기만을 사용한다면, 급격한 날씨 변화로 나타난 변동성을 전기차의 배터리로 상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욕조에 가득차서 출렁거리는 전기를 잠시 담아둘 수 있는 요긴한 양동이를 준비하는 셈이 된다.

전기차와 자연에너지는 서로 훌륭한 보완재가 될 수 있다. 전기차 소비자에게 자연에너지의 변동 위험성을 줄여주는 대가로 그 에너지를 싸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양 끝단에서 친환경 모빌리티와 에너지 생산에 대한 규모의 경제가 달성될 수 있다. 이러한 불가분의 관계로 얻어지는 선순환 구조는 오늘날 심각한 환경 문제를 대하는 우리 생활 속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연에너지와 전기차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무작정 그것을 연결하는 전기선이 필요할 것이라는 하드웨어적인 생각은 시대에 뒤떨어진다. 그보다는 변화무쌍한 자연에너지의 생산량에 맞춰서 전기차 충전 요금을 유동적으로 조절하는 소프트웨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바람이 많이 불거나 태양 빛이 좋을 때는 싼 가격으로, 그렇지 않을 때는 비싼 가격에 충전하도록 사람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전국 각지에 널리 퍼져 있는 자연에너지의 특성을 잘 알고, 전기차 운전자에게 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계산할 수 있는 고도화된 ICT 체계가 필요해진다. 통신으로 연결된 자연에너지와 전기차, 그리고 에너지 생산량과 전기차 충전 수요량을 예측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있다면 실현 가능하다. 이 모빌리티와 자연에너지의 융합.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사물인터넷과 초고속 이동통신을 선도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도전해야 할 에너지 기술혁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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