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는 물론 신재생 분야서도 최고기업 될 것”

오진택 드림엔지니어링 대표는 국내 최다(多) 기술사를 획득해 기네스북에 오르면서 유명세를 탔다. 남들은 하나 따기도 어렵다는 기술사를 9개나 보유하고 있다. 9개 분야에서 능통하니 ‘구(九)색조’라 불리기에도 손색이 없다. 여기에 오 대표는 합격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기술사학원을 운영, 이 바닥에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드림엔지니어링’ 회사를 통해 업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가 만들어가는 ‘드림(Dream)’이 무엇인지 직접 만나 들어봤다.

◆청년 오진택, ‘실패에서 기회를 보다’

오진택 대표는 1969년 1월, 전남 순천에서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학창시절부터 그는 손재주가 좋았다고 한다.

“집 안의 전등이나 전기제품 등이 고장 나면 제일 먼저 저를 불렀죠. 이것저것 손으로 만지면서 노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제가 전기공학도가 될 줄은 몰랐어요.”

순천매산고등학교 재학시절 그는 3년 내내 ‘선행상’을 받을 정도로 성실성과 봉사정신을 인정받았다. “끈기는 있었는데 공부에는 소질이 없었다”고 말한 그는 전자공학도를 꿈꿨지만, 목표한 대학에 떨어지면서 ‘재수’를 택했다. 어려운 집안환경을 알면서도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누님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오 대표는 “당시 교사였던 둘째 누님이 1년 치 학원비를 마련했고, 서울에서 장사를 하던 큰누님 집에서 신세를 지며 공부했다”며 “매일 도시락까지 손수 챙겨주신 큰누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재수에 실패해 진로를 변경, 88학번으로 순천대 전기공학과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당시 순천대에 다니고 있던 큰형의 영향이 컸다는 게 오 대표의 전언이다. 재학중 학비는 자신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했고, 온갖 집안일을 도맡았다. 3학년 때는 ROTC(학생군사교육단)에 지원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소위로 임관, 경기도 동두천으로 배치를 받았다. 전역을 앞두고 그는 지금의 아내 ‘반경애’ 씨를 만났고, 생사고락을 같이했다.

◆능곡 아파트 건설현장, ‘전기계와의 인연이 시작되다’

신혼생활은 지하단칸방에서 무일푼으로 시작했다.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지하단칸방에서 고생한 게 생각나요. 그때만 생각하면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전역하고 나서는 수입이 없어 과외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 전기공사기사를 준비했어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오 대표는 건설현장에 가서 전기공사 일을 했다. 열심히 한 게 눈에 들었는지 동두천의 한 전기공사업체에 취직이 됐다. 더 큰 꿈이 있었던 그는 1995년 전기, 소방설비, 전기공사기사를 취득 후 서울의 ‘신신전기’에 입사했다. 전기계와의 본격적인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기사 자격증만 있으면 취직이 잘 됐어요. ROTC 출신이면 아무데나 취업할 수 있었지만 밑바닥부터 배워가면서 전기 분야 전문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지금 제 수업을 배우는 학생들에게도 중소기업에서 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더 많은 일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죠.”

그의 첫 프로젝트는 고양시 능곡신도시 아파트 건설현장이었다. 현장대리인으로 발령이 나서 가로등 설치를 감독하는 일을 맡았다. 어려운 현장이라 전임자들이 모두 떨어져 나간 곳이었다. 주택공사 감독관도 처음에는 20대 오 대표에게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그의 성실함에 반했다.

“10년간 아파트 신도시현장을 경험하면서 사람 다루는 법을 배웠고, 포기하지 않으면 꼭 결실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때의 실전감각과 업무경험을 바탕으로 오 대표는 굴지의 엔지니어링업체인 ‘도화엔지니어링’으로 회사를 옮기게 된다.

◆기술사 오진택, ‘최다관왕을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딛다’

도화엔지니어링에서는 감리원으로 일하며 전국을 누볐다. 그를 필요로 하는 현장이 있으면 어디든 갔다.

“모든 기술자들은 해당 분야 최고의 역량과 기술자격을 갖춘 기술사를 목표로 합니다. 기사자격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기술사를 보유한 엔지니어링업체는 건설프로젝트를 수주할 때 가점이 있습니다. 기술사를 목표로 하는 이유가 또 생긴 거죠.”

처음 준비한 기술사는 건축전기설비 분야다. 마땅한 학원도 없던 시절 그는 주말마다 대구 현장에서 경기 이천으로 수업을 들으러 가기도 했다. 주중에 감리업무를 보고 야간에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연속이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다 보니 가정은 뒷전이었어요. 아내가 둘째를 유산하는 등 아픔도 겪었죠. ‘이렇게 공부해야 되나’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응원해준 덕에 첫 기술사에 합격할 수 있었죠.”

2006년 건축전기설비기술사에 합격하자 회사 내에서의 대우도 달라졌다고 한다. 특진에 수당도 받았다. 책임감리원이 되면서 최고 기술자에 맞는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분야도 알고 싶어졌다. 전기 분야를 아우르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송·배전을 다루는 발송배전기술사 자격을 따냈고, 내친김에 소방기술사도 합격했다.

오 대표는 “전기 분야 기술사에 이어 설비 분야도 욕심이 났다”며 “정보통신기술사와 건축기계설비기술사, 공조냉동기계기술사에 합격하며 설비 분야를 섭력, 최초로 4개 설비 분야 기술사를 획득하게 됐다”고 말했다.

5개 기술사 자격을 보유한 뒤 한단계 도약을 위한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시험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오진택기술사학원’을 개원했다.

◆드림엔지니어링 창업, ‘신재생에너지 최고 전문가를 꿈꾸다’

학원을 하면서 그는 전기안전, 전기응용 기술사, 화공안전기술사를 추가해 9개 기술사를 획득하며, 국내에서 가장 많은 기술사를 보유하게 됐다. 그 사이 대명기술단에서 8년간 연료전지 프로젝트를 담당하기도 했다. 신재생에너지가 미래 먹거리로 부각되면서 이 분야 전문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또한 학원강사를 겸하면서, 명강사로 인기를 누리며 학원도 확장했지만 다수의 기술사를 보유한 기술자로서의 저의 전문성을 더욱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창업을 결심했고, 2015년 제 꿈을 실현시켜줄 ‘드림엔지니어링’을 설립했습니다.”

드림엔지니어링에는 국내 기술사 최다관왕이란 타이틀을 거머쥔 오 대표의 내공이 오롯이 녹아 있다. 덕분에 이 회사는 전기·소방·통신·기계 설계 및 감리에서부터 발전, 송·변·배전, 철도, 전기안전에 이르기까지 전기와 관련된 모든 업무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오 대표는 “내가 가진 전문성과 기술력을 전기 분야 산업발전에 기여하고자 창업에 나섰고, 사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며 “사명인 ‘드림’도 꿈을 이루고 (사회에) 베풀자는 뜻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드림엔지니어링은 특히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국내 연료전지발전소의 60%를 설계할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 있다. 최근에는 태양광과 풍력 분야로 사업을 확대했고, 대표적인 프로젝트로는 ‘낙월 해상풍력발전(350MW)’과, ‘비금도 태양광발전(200MW)’이 손꼽힌다. 둘 다 오 대표가 인허가 등 사업개발 단계에서부터 참여한 사업으로 애착이 남다르다.

그는 “우리는 설계·감리뿐만 아니라 발전소 인허가 등 사업개발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한다”며 “이는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기술역량과 실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오 대표의 새로운 꿈은 신재생에너지 전문가이자, 드림엔지니어링을 최고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에는 기술사 자격증의 마지막 퍼즐인 ‘화공안전기술사’를 획득하기도 했다. 발전 분야의 안전과 품질에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앞서 2018년에는 한양대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도 취득했다.

“직원들에게 늘 ‘신의’와 ‘책임’을 강조합니다. 기업에 있어 이 두 가지 철칙은 고객을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드림엔지니어링이 전기는 물론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최고 기업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지켜봐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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