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관계자가 철탑에 설치된 송전용 애자를 살펴보고 있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한전 관계자가 철탑에 설치된 송전용 애자를 살펴보고 있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최근 값싼 중국산 애자를 국내산으로 속여 한전에 납품한 이른바 ‘원산지 둔갑’ 사건이 불거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한전의 제품 검수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은 물론 검증되지 않은 중국산 제품이 국내로 유입돼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는 최저가 입찰 방식에 따른 과열 경쟁이 불러온 결과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 평가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중국으로부터 값싼 배전용 폴리머 라인포스트 애자를 들여와 국내산으로 속여 한전에 공급한 A업체 대표가 대외무역법 위반과 사기 혐의로 검찰에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것으로 확인됐다.

A업체 관계자는 “현재 검찰조사 중이라 공식적인 답변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폴리머 애자는 전주의 전기설비에 사용되는 절연체로, 품질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 폴리머 라인포스트 애자는 연간 35~40만대가 설치되고 있다.

◆A업체는 어떻게 한전 검수시스템을 통과했나

중국은 WTO 정부조달협정 대상국가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은 국매 관수시장에 공급될 수 없다. A업체는 이를 위반하고 중국에서 수입한 애자를 직접 제조한 것으로 속여 한전에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A업체가 중국산으로 속여 납품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 폴리머 애자 검수과정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원산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설명이다.

한전 관계자는 “수천개나 되는 폴리머 애자를 모두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보통 5000개 중에서 시료 15~16개를 발췌해 검사하는 샘플링 검수방식을 택하고 있다”며 “해당 시료가 우리가 원하는 규격과 성능을 만족하면 나머지 제품도 문제가 없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중국산인지 아닌지 현실적으로 가려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A업체의 경우 검수용 시료는 공인시험에 통과한 국산 제품으로 준비한 뒤 실제로 한전에 납품할 때는 검증되지 않은 ‘중국산’으로 바꿔치기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렇게 공급된 폴리머 애자는 모두 45만6000여 개로 중국산이 무려 97%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통해 A업체는 수십억원의 부당매출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한전 최저가 입찰경쟁이 이번 사태를 키웠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터질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암암리에 중국산 전력기자재를 수입해 완제품 형태로 납품하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폴리머 애자는 핵심 부품인 ‘섬유강화플라스틱(FRP; Fiber Rainfoced Plastic)’ 코어를 비롯해 실리콘 등 대부분의 구성품을 중국에서 수입해 국내에서 적당하게 조립한 뒤 한전에 납품하는 행태가 있어왔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동안 한전에 납품된 중국산 애자가 더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이처럼 중국산 전력기자재가 국내로 유입되는 데는 한전의 최저가 정책과 무관치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최저가 입찰로 인해 업체들간 가격경쟁이 심화되면서 값싼 중국산이 아니면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4년 2만원 중반대에 형성된 폴리머 애자의 낙찰가는 2017년에 1만원 후반대로 떨어졌고, 올해는 1만원 초반대로 절반 가까이 하락했다. 국내에서 만들 경우 제품원가만 해도 1만원 중반대로 알려져 인건비 등을 합치면 국내 제조 대신 저렴한 중국산을 들여오는 게 가격경쟁력 확보에 유리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검증되지 않은 중국산 더 있을 수도…한전 품질확보 ‘비상’

국산제품이 검증되지 않은 중국산으로 둔갑하면서 품질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A업체가 한전에 납품한 폴리머 애자 역시 검찰조사 결과 제대로 된 성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그동안 A업체가 납품한 폴리머 애자의 사용을 중지한 상태지만 해당업체에는 별다른 제재 조치를 내리지 않은 상태다. 심지어 지난 8월에도 A업체와 폴리머 애자를 구매하는 연간단가 계약을 맺은바 있다. A업체는 지역경쟁물량으로 사업을 따낸 뒤 초도물량 납품을 앞두고 있다.

당시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내 사업을 수주한 B업체는 아직까지 폴리머 애자를 납품하지 못해 지체상금을 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체 물량의 70% 가량을 따낸 B업체가 제때 폴리머 애자를 공급하지 못해 한전은 다른 업체를 통해 개별적으로 제품을 공급받을 예정이다.

한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 8월 계약한 연간단가 업체가 모두 제품을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불가피하게도 총가 계약을 통해 다른 업체로부터 폴리머 애자를 납품받을 예정”이라며 “A업체에 대해서는 검찰조사와 재판결과를 보고 적절한 조치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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