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도시재생 사례 多...영국 테이트모던이 ‘모범사례’
카이샤 포럼·가소메터 시티 외에 문화비축기지 등 국내사례도
표준석탄화력은 활용방안에 앞서 폐지·존치 여부도 논란

‘7080 석탄화력발전소’를 시작으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된 가운데 석탄화력발전소의 건물이나 설비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보다 먼저 산업화를 겪은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발전소 등 산업유산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활용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현대미술관이다.

런던 템스강 옆에 있던 뱅크사이드화력발전소는 오랫동안 방치돼 있다가 21세기를 맞이하면서 현대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테이트모던을 설계한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뮤론이 2001년 프리츠커상을 받을 정도로 파급력이 상당했고 그 이후 발전소 건물을 보존한 채 용도를 변경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서울화력발전소도 폐지된 서울 4·5호기를 ‘문화창작발전소’로 재활용할 예정인데 관계자들은 이를 테이트모던을 뛰어넘는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화력발전소와 가스 저장고의 변신

1899년에 건설된 스페인 마드리드의 메디오디아화력발전소는 2007년 ‘카이샤 포럼’으로 다시 태어났다.

마드리드 도심에서 전력공급을 담당하던 메디오디아화력발전소는 폐지된 이후 방치돼 있었다.

2001년 카이샤 그룹은 문화예술 공간을 건립할 목적으로 이를 사들였고, 앞서 테이트모던을 탄생시킨 헤르조그와 드 뮤론을 설계자로 점찍었다.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메디오디아화력발전소는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카이샤 포럼으로 다시 태어났다.

카이샤 포럼은 현재 더 많은 사람이 미술과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카이샤 포럼 근방에 있는 미술관들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마드리드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발전소는 아니지만 가스 저장고를 재활용한 오스트리아의 ‘가소메터 시티’도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꼽힌다.

1899년부터 1984년까지 오스트리아 빈에 공급하는 가스를 저장했던 가소메터가 2001년 작은 도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가소메터는 ‘가스 저장고’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가소메터 시티는 말 그대로 가스 저장고에 만든 도시다.

전문가들은 산업화 시대의 유산을 보존할 때 문화 시설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많은 와중에 도시로 다시 태어난 것이 가소메터 시티의 특이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네 동으로 구성된 가소메터 시티는 아파트와 학생기숙사, 사무공간을 포함해 이벤트홀, 쇼핑몰도 있어 하나의 완벽한 도시를 구성했다.

장 누벨, 쿠프 히멜블라우, 만프레트 베도른, 빌헬름 홀츠바우어 등 네 명의 건축가가 한 동씩 맡아 설계함으로써 건물마다 각기 다른 특색이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우리나라도 현재 추진하고 있는 문화창작발전소 외에 산업화 유산을 재활용한 사례들이 있다.

1970년대 중후반 서울 마포구에 건설돼 2000년까지 30년이 넘도록 서울시민이 한 달가량 사용할 수 있는 석유를 비축하는 용도로 사용된 ‘마포 석유비축기지’는 지난 2017년 문화비축기지가 돼 41년 만에 일반에 공개됐다.

2000년 폐지된 이후 방치돼 있던 시설을 시민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문화비축기지로 활용하기로 결정했고 6907만ℓ의 석유를 비축하던 5개의 탱크는 각자의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고 일반인들을 맞이하게 됐다.

이와 같은 다양한 사례들은 원래 사용하던 용도에서부터 재활용 이후의 용도까지 모두 다양하지만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를 재활용할 수 있는 방안으로 참고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표준석탄화력의 운명은

이미 폐지가 확정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의 뒤를 이어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운명이 결정될 표준석탄화력발전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들어선 500㎿(50만㎾)급 표준석탄화력발전소가 살생부에 포함되는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에 지어진 500㎿급 표준석탄화력발전소는 남동발전의 삼천포 5·6호기, 중부발전의 보령 3~6호기, 서부발전의 태안 1~4호기, 남부발전의 하동 1~6호기, 동서발전의 당진 1~4호기 등 20기다.

그러나 이들 표준석탄화력발전소는 이미 폐지가 결정돼 활용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7080 석탄화력발전소’와는 달리 폐지 여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이들 발전소를 무조건 폐지하기보다는 어떻게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많기 때문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석탄화력발전소는 우리가 건설한 소중한 설비”라며 “경제성을 갖춘 석탄화력발전소는 환경설비를 강화해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등 폐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전업계 관계자 A 씨도 “쓸 수 있는 설비는 쓰는 게 가장 좋지만 폐지를 해야 한다면 석탄화력발전소를 콜드 리저브(cold reserve)로 활용해야 한다”며 “평소에는 최소한의 관리만 하다가 수요가 몰리는 시기에 잠깐 가동하는 방식으로 예비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지하지 않고 콜드 리저브로 활용하는 경우 고용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임금피크제 대상 인원을 석탄화력발전소에 최소한의 관리인력으로 두는 방법, LNG복합화력발전소로 전환하면서 남는 인력을 석탄화력발전소의 관리인력으로 두는 방법 등 방법은 다양하지만 인력의 인위적인 감축이 불필요하다는 장점은 분명하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전체 설비의 폐지와 진입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노후 석탄발전소뿐만 아니라 노후 가스발전소도 폐지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한 만큼 석탄·가스발전소를 동시에 폐지하면 그에 상응하는 설비용량을 새로 건설되는 발전소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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